[투데이 窓]스타트업, 잉여를 만들어주자

최항집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기사 입력 2022.08.1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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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칼럼]

최항집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최항집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쓰고 난 후 남은 것이나 어떤 분량에서 주된 부분을 빼고 남은 부분을 '잉여'라고 한다. 인류문명의 발전은 잉여로부터 비롯됐다. 인류가 정착해 농경을 시작하고 농경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잉여 생산물이 생겼다. 잉여로 인해 더이상 모두가 농민일 필요는 없었기에 당시에는 잉여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도공, 상인, 군인과 같은 전문가가 출현했고 각자의 역할로부터 만들어낸 잉여 가치와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네트워크의 발전과 문명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데이비드 크리스천 교수가 '빅히스토리' 프로젝트를 통해 정리한 내용이다.

혁신의 시대에는 결과물의 잉여뿐만 아니라 투입되는 자원의 잉여도 중요해졌다. 일정수준 투입자원의 잉여는 혁신성과를 높인다. 최소한의 필요자원만으로 운영할 경우 당장의 현안 외에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거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투입자원의 잉여는 효율의 시대에는 줄여야 할 대상이지만 혁신의 시대에는 억지로라도 만들어내야 할 대상이다.

아르키메데스는 책상이 아닌 욕조에서 고민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과 시간의 잉여를 만들어 '유레카'를 외칠 수 있었고 실리콘밸리의 많은 스타트업은 '거라지'(garage)라는 공간의 잉여에서 혁신을 시작했다. 잊힐 뻔한 기업을 되살린 비즈니스 중에는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잉여 프로젝트로 시작된 것이 많다.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여전히 많은 잉여가 필요하다. 잉여자원을 투입해 혁신으로 잉여가치를 만들고 비즈니스를 통해 잉여금을 만든다. 이 결과물의 잉여가 다시 자원의 잉여로 투입돼 또다른 혁신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작동하는 혁신의 선순환 체계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스타트업 생태계의 결핍을 보완하고 잉여를 만들려 하는 이유다.

스타트업 생태계로 유입되는 자금이 과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온다. 투자자의 선호와 세상이 필요로 하는 스타트업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수요 우위 투자시장이 되면서 그동안 투자를 꺼린 소재, 부품, 장비나 딥테크에도 자금이 흘러들어가고 항공우주, 환경, 소셜과 같은 영역에서도 스타트업의 혁신이 진행된다.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투자자금의 잉여가 아직 더 필요하다. 또 혁신에 필요한 인재를 직접 고용하고 육성하는 스타트업 생태계 현장에는 인력자원의 잉여가 필요하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스타트업 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이 연결됐고 1990년대에 이미 초고속 인터넷망이 보급됐다. 인터넷에 기반한 세계 최초 제품과 서비스들이 탄생했고 이때 기업들은 지금 스타트업 붐의 토대가 됐다. 당장의 잉여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함에도 과감히 펼친 잉여정책이 혁신의 기반이 됐다. 코로나가 이미 진행되던 변화를 급속히 가속한 지금이 진정한 21세기의 시작이라고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는 말한다. 혁신을 위한 과감한 정책과 투자의 잉여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다만 지금 스타트업 생태계에 가장 필요한 잉여는 무엇보다 창업가들의 정신적 잉여인 것 같다. 최근 한 스타트업 거장의 별세와 함께 창업가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모든 것이 새로울 수밖에 없는 스타트업 창업가는 회사와 비즈니스, 조직, 가족까지 정답이 없는 고민들과 막중한 책임감에 눌려 지낸다. 겉으로는 수천억 원의 기업가치로 평가되는 스타트업이지만 속으로는 매일 울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면 그들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대나무숲이라도 만들어주고 싶다. 혁신의 시대 거대한 변곡의 시점에 창업가는 우리의 중요한 자산이다. 창업가들에게 정신건강의 잉여는 다른 어떤 잉여보다 억지로라도 만들어주어야 할 잉여다. 이제 이런 잉여의 글은 빨리 접고 창업가의 정신건강에 도움될 프로그램을 만들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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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사진 최항집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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