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 나온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업정보는 유니콘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 '데이터랩'에서 볼 수 있습니다.] 2026 기술경영경제학회 하계학술대회'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사진=류준영 기자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 서비스를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최근 이들 서비스의 성능이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느꼈을 것이다. AI 기술은 머지않아 빠르게 평준화될 것이며, 앞으로의 결정적 차별화 요소는 하드웨어, 즉 피지컬 AI에서 나올 것이다." (조규진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서울대 로보틱스연구소장))
"AI(인공지능) 시대든 피지컬 AI 시대든 결국 혁신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을 움직이고 성장시키는 것이 혁신 성장의 출발점이다." (천영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원장)
기술경영경제학회가 2일 제주시 메종글래드 제주호텔에서 2박3일 일정으로 하계학술대회의 막을 올렸다. 기술경영경제학회는 35년 차에 접어든 기술·경영·경제의 융합 연구를 선도하는 국내 대표 학술 단체다. 올해 대회 주제는 '에이전틱 AI와 혁신 생태계: 제조에서 서비스까지'이다. 40여개 세션에 접수 논문만 200여편, 참가 등록 인원은 1000명 안팎에 이를 것으로 학회 측은 추산했다.
조규진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사진=류준영 기자
━
로봇 스스로 형태·강성 바꾸는 몸체와 부위별 모듈형 지능…'물리적 지능' 제안
━
이날 첫 기조강연은 로봇공학 분야 석학인 조규진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서울대 로보틱스연구소장)가 맡았다. 조 교수는 최근 정부가 세계 최고·최초 수준의 연구기관을 육성하기 위해 추진하는 'NRL(국가연구실) 2.0' 사업에 선정돼 향후 10년간 장기 지원을 받는 국가연구실 연구책임자로 이름을 올렸다.
조 교수는 '물리적 지능을 향한 진화: 피지컬 AI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혁신 연구생태계'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지난해 전 세계에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가 처음으로 1만2000대 생산됐다"며 "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지, 아니면 기대만 남긴 채 사라질지를 가르는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휴머노이드 시장이 급부상한 배경으로 전 세계적인 노동력 부족과 생성형 AI, 특히 VLA(Vision-Language-Action) 모델의 등장을 꼽았다. 그는 "미국은 소프트웨어와 AI를, 중국은 하드웨어와 양산 능력을 앞세워 조 단위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반면, 한국은 아직 수백억원 규모의 투자에 머물며 '패스트 팔로잉(빠른 추격자)'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현재의 기술 개발 방식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지금의 로봇은 거대한 하나의 뇌가 손가락 관절 하나하나까지 모두 제어하는 구조"라며 "이 때문에 디지털 AI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와 전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안으로 '물리적 지능' 개념을 제시했다. 사람의 뇌가 부위별로 기능을 분산해 처리하고, 몸 역시 반사신경과 근육의 강성 조절을 통해 뇌의 부담을 줄이듯, 로봇도 스스로 형태와 강성을 바꾸는 몸체와 부위별 모듈형 지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AI가 자신의 몸을 인식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면 대규모 데이터 학습 없이도 작업 성공률을 훨씬 빠르게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연구의 사례로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멀티 오브젝트 그리퍼'도 소개했다. 이 장치는 사람처럼 한 손으로 여러 물체를 연속해서 집을 수 있는 로봇 손이다.
조 교수는 로봇 산업의 경쟁력은 결국 하드웨어에서 갈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각에서는 하드웨어는 이미 완성됐고 중국산을 가져다 쓰면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며 "로봇 몸체는 아직도 연구해야 할 영역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이어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를 사용해 보면 서비스 간 성능 차이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며 "AI 기술은 빠르게 평준화될 것이고, 결국 결정적인 차별화 요소는 하드웨어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드웨어는 발전 속도가 느린 만큼 한 번 기술 격차가 벌어지면 따라잡기가 훨씬 어렵다"며 "제조 경쟁력과 창의성을 동시에 갖춘 한국이 반드시 승부를 걸어야 하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내년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로봇학술대회 'ICRA'를 언급하며 "중국이 TV 무대에서 로봇 칼군무를 선보였다면, 우리는 국립중앙박물관 앞에서 로봇이 한국의 춤을 추고 서예를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기술과 문화가 결합된 '로봇 강국 대한민국'을 세계에 각인시키겠다"고 말했다.
천영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원장/사진=류준영 기자
━
"레드오션에서 초격차로"…15년 만에 매출 5배 성장
━
이어 두 번째 기조강연에 나선 천영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원장은 '시험인증기관의 한계 돌파와 초격차 달성(KCL의 혁신성장과 3E 기업가정신)'을 주제로 KCL의 성장 전략과 혁신 경험을 소개했다.
KCL은 1971년 설립된 한국생활환경시험연구원과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를 계기로 1994년 출범한 한국건자재시험연구원이 2010년 이명박 정부의 시험인증기관 대형화·글로벌화 정책에 따라 통합되면서 출범했다.
통합 당시 직원 536명, 매출 650억원 규모였던 기관은 15년 만에 직원 1100명, 매출 35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인력은 두 배가량 늘었지만 매출은 5배 이상 증가했다.
천 원장은 "통합 당시 KCL의 주력 분야였던 건축자재와 생활환경 시험은 전기전자·통신 중심의 컨버전스 시대에서 가장 뒤처진 레드오션이었다"며 "그런 언더독이 불과 7~8년 만에 국내 시험인증기관 1위에 올랐고, 현재는 2위 그룹과는 1000억원, 3위 그룹과는 2000억원 이상의 매출 격차를 유지하는 초격차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천 원장은 KCL의 성장 과정을 로켓이 우주 궤도에 진입하기 위한 '3단 추진체'에 비유했다. 첫 번째 추진체는 '성과 중심의 보상 체계'다. KCL은 호봉제가 일반적이던 2012~2013년 노조와의 협의를 거쳐 시험인증기관 최초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고, 개인·부서·기관을 아우르는 3단계 성과보상 시스템을 구축했다.
두 번째 추진체는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대 변화에 맞춘 과감한 선제 투자'였다. KCL은 정부 출연금 없이 자체 재원으로 1000억원 이상을 전기차 배터리와 전동화(인버터), 전자부품 시험 인프라 구축에 투자했다. 또 수도권 완성차 업체 인근에 전문 인력과 장비를 집중 배치하며 시장 변화에 대응했다.
그 결과 전기차 관련 매출은 2020년 71억원에서 454억원으로 6배 이상 증가했다. 천 원장은 "시험인증기관임에도 석·박사 인력 비중이 60%에 달하고 민간 R&D 매출 비중도 22%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포함해도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세 번째 추진체는 '미래를 향한 비전 제시'였다. KCL은 매출 1000억원이 채 되지 않던 시절 '5년 내 매출 3000억원'을 목표로 한 '비전 2025'를 발표했고, 지난해 업계 최초로 매출 3500억원을 달성했다. 천 원장은 취임 이후 '2030년 매출 5000억원'을 새로운 목표로 제시하며 AI·디지털, 전기용품 안전인증, 전력기기와 전력반도체를 차세대 성장 분야로 선정했다.
그는 이러한 성장 전략을 사람 중심 기업가정신인 '3E'로 정리했다. 구성원과 공감하는 엠퍼시(Empathy), 권한을 위임하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 사람과 자원을 연결해 비전을 실현하는 이네이블링(Enabling)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천 원장은 "AI 시대든 피지컬 AI 시대든 결국 혁신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며 "구성원과 함께 성장하는 경영이 초격차의 토대"라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시험인증기관들은 상장과 인수합병(M&A)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왔지만, 한국은 2010년 통합 이후 국내 시장에 머문 측면이 있다"며 "이제는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갈 때"라고 강조했다.
━
"같이 달려야 한다"…공공·민간 '제도 빌딩' 화두 던진 기경학회 패널토론
━
이어 패널토론에서는 AI시대 공공과 민간의 역할 재정립이 화두로 제시됐다. 안준모 기술경영경제학회장(고려대 행정학과 교수)은 "조규진 교수의 피지컬 AI와 천영길 KCL 원장의 시험인증 발표는 겉으로는 서로 다른 주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문제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그는 "조 교수가 제시한 일상 속으로 들어오는 로봇은 결국 모두 안전성과 신뢰성을 검증받아야 한다"며 "우리 삶의 경계 안으로 들어오는 로봇을 어떤 기준으로 인증하고 사회가 허용할 것인가는 기술사업화의 핵심 과제이며, 공공과 민간이 함께 풀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안 회장은 최근 유비테크 등 중국 로봇기업을 방문한 경험도 소개했다. 그는 "중국은 이 문제를 보험 제도와 연계해 해결하고 있었다"며 "국가가 보험 제도를 설계하고 민간이 이를 상품화하는 방식으로 공공과 민간이 역할을 나누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KCL 역시 공적 기능을 수행하지만 법적으로는 민간기관"이라며 "이제는 공공과 민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거나 순차적으로 역할을 넘기는 시대가 아니다. 함께 달리며 제도를 만들어가는 '제도 빌딩'이 중요하다. 기술경영 분야도 이러한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지고 연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우성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도 AI 시대에는 공공과 민간의 협력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최근 한 달간 피지컬 AI와 AX(AI 전환)를 추진하는 기업 임원들을 여러 차례 만나면서 '대학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계속 남았다"며 "일각에서는 기업이 이미 기술을 완성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인식도 있었지만, 오늘 기조강연을 들으며 대학이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고, 우리가 그 역할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공공과 민간이 TRL(기술성숙도) 단계에 따라 순차적으로 바통을 넘기는 '이어달리기' 방식이었다면, AI 시대에는 양측의 역할이 훨씬 복합적으로 얽힐 수밖에 없다"며 "공공과 민간이 어떻게 융합해 역할을 수행할지, 그리고 이를 기술경영·정책 분야가 어떻게 학문적으로 뒷받침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