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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건설·제조업계에서 발생한 잇따른 사고들은 우리 사회에 다시 한 번 '위험의 외주화'라는 하도급 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돌아보게 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직접적인 생명과 안전 문제는 아니지만 비슷한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바로 '육성의 외주화'다. 이로 인해 프로그램이 형식화되거나 실질적 효과가 약화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은 대표적인 정부 주도형 창업생태계 국가다.모태펀드 출자부터 다양한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까지 매년 상당한 규모의 예산이 공공기관을 통해 집행된다. 자연히 민간 액셀러레이터(AC, 창업기획자)들은 이러한 공공사업을 수주해 운영하는 방식으로 생존을 이어간다. 여기서 여러 구조적 문제가 나타난다.
공공기관은 평가와 감사에 대응하기 위해 정량적 성과지표(KPI)에 맞춘 사업 설계를 선호한다. 대표적인 지표는 '투자받은 기업 수'와 '투자유치 금액'이다. 하지만 액셀러레이터 입장에서는 어떤 기업이 선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용역을 수주해야 하므로, 투자 확약을 앞세우는 전략이 자주 활용된다. 업계에서는 이런 사례가 오래전부터 회자돼 왔다.
이 과정에서 투자가 기업 선발의 도구로 변질되고, 육성은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멘토링은 외부 인력에게 위탁되는 경우가 많고, 내부 핵심 인력은 펀드 결성과 투자 집행에 집중한다. 펀드가 있어야 투자가 가능하고, 투자가 가능해야 다시 공공사업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프로그램은 겉으로는 활발해 보이지만, 실제 육성 효과는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멘토링 횟수 같은 지표는 채워지지만 전략 코칭이나 시장 연계, 심층적인 피드백은 부족하다. 스타트업들은 단순한 참여 실적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시간과 비용 대비 체감되는 효용이 크지 않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러한 구조는 투자·육성 역량을 갖춘 액셀러레이터들의 역할을 위축시키고, 규모 중심의 기관에 편중을 심화시킨다. 시간이 지날수록 육성보다 사업 운영을 위한 지표 달성이 우선되면서 본래 목적과 현장 수요 사이의 간극은 더 벌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문제는 업계 내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부담은 결국 스타트업에게 돌아간다. 생태계의 주체인 이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앞으로는 공공기관의 역할과 지표 설정 방식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 단순히 '몇 개 기업에 얼마를 투자했는가'가 아니라 △참여 기업이 어떤 전문적 지원을 받았는지 △실제 어떤 전문가가 프로그램에 참여했는지 △액셀러레이터의 내부 인력이 육성 과정에 얼마나 관여했는지 등의 새로운 지표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투자 중심의 성과 경쟁보다는 '육성의 질적 성과'를 강조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공기관은 행정적 편의보다 스타트업의 성장과 미래를 우선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혁신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