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마음, 산업이 되다] ①
연 300조 시장…심리상담부터 수면관리까지
코로나가 키운 멘탈 시장, 해외선 줄줄이 유니콘
마음 아픈 한국인…한국도 멘탈테크 급성장
[편집자주] 과도한 경쟁이 불안과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속마음 털어놓을 곳 없는 외로움이 정신을 병들게 한다. 몸이 아플 땐 병원에 가지만 마음이 아플 땐 어찌할 지 방법을 몰랐던 사람들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달라졌다. 지친 마음을 적극적으로 치유하려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관련 시장도 커지고 있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심리상담부터 수면관리까지 가능한 세상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파르게 성장하는 멘탈케어(정신건강) 산업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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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A홈쇼핑 고객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는 김모씨는 한 달에 두 번 비대면으로 심리상담을 받는다. 하루 종일 불만을 쏟아내는 고객들을 응대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극심했고 결국 불면 증상까지 나타났기 때문이다. 정신과 병원에 가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동료로부터 전문가와의 상담을 연결해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추천 받았다. 30분 상담받는데 드는 비용은 약 5만원. 김씨는 "심리상담은 내 정신을 지키는 루틴"이라며 "마음에 주는 비타민이라고 생각하면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직장 업무와 학업 스트레스, 불편한 인간관계 등으로 만성 불안·초조·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멘탈케어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 편견, 비대면을 선호하는 시대적 트렌드가 AI(인공지능) 등 첨단기술과 맞물려 멘탈테크 기업들이 주목받는 분위기다. 이미 미국 등 해외에선 멘탈케어 서비스를 하는 기업들이 줄줄이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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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마음"…열린 지갑, 커지는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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및글로벌 멘탈케어 시장 규모 및 멘탈케어 사업분야별 성장 추이/그래픽=이지혜멘탈케어는 정신적 질병이 있어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만 쓰이는 개념은 아니다. 지치고 피곤한 심리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고 적절히 관리해 삶의 질을 높이려는 일종의 자기관리다. 전문가 상담과 감정·수면 관리, 보조식품 섭취, 명상 등이 모두 멘탈케어 영역에 속한다.
26일 미국 비영리 연구기관 글로벌웰니스연구소(GWI) 집계에 따르면 2023년 전세계 멘탈케어 시장규모는 2326억달러(약 316조원)에 달한다. 2019년 1500억달러(약 203조원) 규모였던 시장이 4년새 55% 커졌다. 앞으로도 연평균 12.2% 성장세를 지속해 2028년 시장규모는 4140억달러(약 562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외를 막론해 멘탈케어 시장의 성장 분기점은 코로나19 팬데믹이다. 과거엔 마음의 병을 속으로 삭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사상 최악의 팬데믹을 거치며 몸 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체감한 사람들이 늘었다. 비대면 서비스 사용이 일상화하고 멘탈케어 앱 등 기술이 발전한 것도 주효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수십년간 2곳에 불과했던 멘탈케어 유니콘이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이후 1년 만에 7곳으로 늘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올 6월 현재 멘탈케어 유니콘은 8곳이다. 라이라헬스, 스프링헬스, 모던헬스 등 글로벌 멘탈헬스 대표 기업들이 팬데믹 기간 이용자들을 대거 확보하며 기업가치가 뛰어 단숨에 유니콘 대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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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속 전문가 '좋아요'…'멘탈테크' 각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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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우울증 환자수, 한국 자살률 추이, OECD 주요국 자살률 비교/그래픽=이지혜국내에도 최근 4~5년간 첨단기술로 무장한 멘탈테크 기업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20년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부동의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은 산업 관점에선 멘탈케어 수요가 많다는 지표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사업 분야별로는 아토머스·포티파이 등처럼 정신과 전문의나 전문 상담사와의 매칭을 돕거나 병원과 유사한 방식으로 심리상담이 이뤄지는 플랫폼 앱이 인기다. 경력 등 소개글, 다른 이용자 후기 등을 살펴본 뒤 자신에게 맞는 전문가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데다 상담이 비대면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장점이다.
블루시그넘·마보 등 전문가 상담 없이 셀프 멘탈케어를 돕는 앱, 에이슬립·리솔 등 수면관리 앱도 있다. 앱 외에는 웨어러블·가상현실(VR) 등 하드웨어 기기, 스트레스나 불안 등을 낮춰주는 기능성 보조식품 등도 있다. SKT·KT·LGU+ 등 통신사, 삼성생명·현대해상·한화손보 등 보험사 등도 AI 기반 정신건강 플랫폼을 내놨다.
수요가 많은 시장에 투자도 몰렸다. 아토머스·와이브레인은 300억~400억원대, 에이슬립 등은 100억원대 누적 투자금을 유치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 자살률이 왜 이리 높냐"고 지적하며 정신건강 문제가 정책 과제로 떠오른 만큼 앞으로 관련 투자가 더 늘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특히 직원 복지 및 안전사고 예방 차원에서 멘탈케어 서비스 도입을 검토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어 B2B(기업 간 거래)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기존 틀에 박힌 정책을 재탕, 삼탕하는 것으로는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심리상담 등 멘탈케어 항목을 보험 급여에 포함하든, 기업 대상 중대재해처벌법에 직원 정신건강 관련 투자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 라인을 추가하든 보다 명확한 해법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