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규제개혁 골든타임

임상연 미래산업부장 기사 입력 2022.12.12 03:15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 해주세요.

공유하기
글자크기
뉴코애드윈드의 디지털 광고 배달통 '디디박스'가 장착된 오토바이 /사진=뉴코애드윈드
뉴코애드윈드의 디지털 광고 배달통 '디디박스'가 장착된 오토바이 /사진=뉴코애드윈드

무려 3년이 넘게 걸렸다. 혁신 놀이터라는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스타트업이 신기술·서비스를 검증하고 실증사업 범위를 확대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그사이 해당 스타트업은 폐업위기에 내몰리고 대표는 수십억 빚더미에 올랐다. 오토바이 스마트배달통 '디디박스'를 운영하는 뉴코애드윈드 장민우 대표의 이야기다.

뉴코애드윈드는 2019년 문재인정부가 도입한 규제샌드박스에서 '실증특례 1호 기업'으로 선정됐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상 도로교통수단은 전기나 발광방식의 조명을 이용하는 광고물 부착이 금지돼 있어 디디박스 사업화를 위해선 규제샌드박스를 거쳐야 했다.

당시 실증특례를 통해 광주·전남에서 2년간 디디박스를 최대 100대 운행할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았다. 사업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지만 6개월 후 안정성 등을 검토해 운행 대수와 지역을 확대해주겠다는 정부의 말을 믿고 버텼다고 한다.

하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등 관계부처간 이견으로 규제완화는 차일피일 미뤄졌고 회사는 적자만 쌓여갔다. 장 대표가 국회와 부처들을 오가며 읍소하고 시위도 벌였지만 소용없었다.

참다 못한 장 대표는 올해 초 규제가 덜한 중동으로 회사를 옮기기로 결심했다. 그는 당시 "규제샌드박스는 안전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래밭이 아니라 스타트업을 잡아먹는 개미지옥이다. 바보같이 정부와 공무원을 믿은 내 잘못"이라고 토로했다.

상황이 바뀐 것은 규제개혁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윤석열정부가 들어서면서다. 정부는 최근 뉴코애드윈드의 실증특례 지정조건 변경을 승인했다. 광주·전남으로 제한했던 디디박스의 운영범위를 서울·경기 및 6대 광역시와 제주도로 대폭 확대한 것이다. 운영 대수도 100대에서 최대 1만대로 무려 100배 늘렸다.

이에 따라 뉴코애드윈드는 2024년 2월까지 사실상 전국에서 사업성을 검증하고 디디박스로 인한 직접적인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1단계 2300대, 2단계 8000대, 3단계 1만대로 규모를 확장할 수 있게 됐다.

천신만고 끝에 재도약 기회를 얻은 장 대표는 당초 추진하던 중동 본사 이전을 보류하고 다시 국내 사업에 힘을 쏟기로 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디디박스를 통해 수수료에 의존하는 배달생태계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는 게 그가 국내에 남기로 한 이유다.

디디박스가 다시 달릴 수 있게 됐지만 그 과정을 보면 답답할 뿐이다. 규제완화에 반대하던 부처들이 정권이 바뀌자 입장이 달라진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규제 뒤에 숨은 공직사회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로 인해 창업가들이 사업추진에 애를 먹거나 중도포기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편에선 혁신적인 신기술·서비스라고 한껏 치켜세우면서도 기득권 눈치보기에 급급해 신·구 산업간 갈등을 방치하고 관련 스타트업들이 사지에 내몰리는 것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오죽하면 스타트업 4곳 중 1곳(25.4%)이 '규제를 피해 해외 이전을 고려 중'(한국무역협회 설문조사)이라고 하겠나.

이런 식이라면 '규제개혁을 통한 혁신성장'은 또다시 요란한 구호에 그칠 게 뻔하다. "새로운 시대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 시대"라는 클라우스 슈바브 세계경제포럼 회장의 말처럼 혁신성장을 위해선 신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개혁에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

일각에선 벌써부터 정권 초반의 귀중한 골든타임이 부질없이 흘러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내년 하반기부터 정치권이 2024년 총선 모드에 들어가면 과거처럼 규제개혁 동력은 떨어지고 타다 사태와 같은 반혁신 망령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 경제의 미래는 스타트업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혁신성장을 위한 변화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규제개혁의 고삐를 더욱 바짝 당겨야 한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광화문' 기업 주요 기사

이 기사 어땠나요?

이 시각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