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코리아 'R&D' 패러독스<2>

임상연 미래산업부장 기사 입력 2021.08.0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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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확한 진단 없이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다. 원인은 모른 체 대책만 남발하면 오히려 문제가 커지고 배가 산으로 갈 가능성만 높아진다. '코리아 패러독스'(적극적인 R&D 투자에도 기업의 실적이나 경제성장세가 시원치 않은 현상)에 대응하는 청와대와 정부의 모습이 딱 그 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특허건수는 많아도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는 비율이 낮다든지, R&D(연구·개발) 성과가 산업현장의 생산으로 연결되는 비율이 낮다는 비판이 여전히 반복된다"며 특허활용률 제고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공공부문 특허 중소기업 무상제공 △IP(지식재산권)금융 확대 등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매년 국가 R&D사업에 수십조 원의 혈세를 쏟아붓지만 '장롱특허'만 양산한다는 비판이 일자 대책마련을 지시한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에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정확한 진단 없이 단편적인 처방만 반복해선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공공부문 특허를 중소기업에 무상제공하는 방안은 오래전부터 수차례 진행한 사업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특허활용률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단적인 예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의 특허활용률은 2016년 34.7%, 2018년 34.9%, 2020년 36.5%로 수년째 게걸음한다.

특허를 공짜로 풀어도 기업들은 왜 쓰지 않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당장 쓸 만한, 돈이 될 만한 특허가 보이지 않아서다. 당연한 얘기지만 돈이 될 만한 특허라면 공짜가 아니어도 서로 쓰겠다며 경쟁을 벌였을 것이다. 공공부문 특허활용을 검토했다가 포기한 A중소기업 대표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현장에서 쓸 만한 기술이 없었습니다. 기술완성도를 높이려면 추가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도 성공을 확신할 수 없어 접었습니다. 왜 특허까지 냈을까 싶은 기술도 있더군요."

막대한 혈세를 R&D에 투입해 얻은 특허의 질이 점점 나빠진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술보증기금에 따르면 19개 출연연의 보유특허 중 보증이 불가능한 C등급 이하 비율은 2014년 16.9%에서 해마다 상승해 2019년 50%를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53.9%에 달했다.

얼마 전 대한변리사회가 내놓은 평가는 더 신랄하다. 변리사회가 올해 19개 출연연이 특허청에 등록한 384건의 특허를 분석해 10등급으로 나눈 결과 최우수인 1등급은 단 1개도 없었다. 절반 이상(57.8%)은 사실상 장롱특허로 구분되는 5·6등급이었고 2등급이 1개(0.3%), 3등급 25개(6.5%), 4등급 136개(35.4%)였다.

기업이 특허를 담보로 자금을 빌리거나 투자를 받는 IP금융 확대도 정답이 될 수 없다. 무턱대고 늘리면 부실만 키우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국내 IP금융 규모는 지난해 기준 2조원 정도며 이중 87%는 대출이나 보증이었다. 특히 IP담보대출은 2019년 4331억원에서 지난해 1조930억원으로 1년 새 2배 이상 급증했다. 정부가 IP회수지원기구를 만들고 "부실이 발생하면 최대 50% 책임지겠다"며 대출을 독려한 결과로 금융권 일각에선 이미 "조마조마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평가역량보다 손실보전에 의존한 대출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동안 우리는 숱하게 경험했다.

특허활용률을 높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기업들이 혹할 만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국가 R&D역량도 여기에 집중하면 된다. 이를 위해 청와대와 정부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전문가가 수없이 설명하고 강조했다. 정말로 특허활용률을 높이고 싶다면 비효율적인 국가 R&D 사업체계부터 제대로 혁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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