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원 출신 '원자력 딥테크 스타트업' 좌담회
원자력 관련 기술력 돋보이는 알엑스·큐토프·큐빔솔루션
"한국 기술경쟁력 충분, 글로벌 선도할 민관협력 전략 필요"
[이 기사에 나온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업정보는 유니콘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 '데이터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정도영 큐토프 대표,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의 최수임 프론티어테크팀장, 정봉기 큐빌솔루션 대표, 이강헌 알엑스(RX) 대표/사진=류준영 기자
다시 원자력이 주목받고 있다. 체코 원전 수주, 국내 신규 원전 건설, SMR(소형모듈원자로) 특별법 통과까지 시장과 정책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 AI(인공지능)와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원전은 다시 '현실적인 선택지'로 부상하는 분위기다. 이런 변화는 대기업뿐 아니라 차세대 기술을 앞세운 딥테크(첨단기술) 스타트업에도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민간 주도로 이른바 '제2의 원자력 르네상스' 전환기를 열어 가는 시점에 차세대 원전, 핵융합, 핵심소재 분야에 도전장을 내민 세 명의 한국원자력연구원 출신 창업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자외선 광섬유 레이저 기반의 동위원소 분리 기술로 차세대 원전의 핵심소재를 생산하는 큐토프의 정도영 대표, 소형 핵융합 중성자 발생 장치를 개발 중인 큐빔솔루션의 정봉기 대표, 나선형 증기발생기 설계 플랫폼 등 독자 기술을 보유한 차세대 원전 엔지니어링 스타트업 알엑스의 이강헌 대표가 주인공. 최근 대전 유성구 엑스포타워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전 회의실에서 진행한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현재 한국 원자력 산업이 마주한 기회와 한계는 무엇인지, 그리고 민간 딥테크 기업들은 어떤 전략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는지 들어봤다. -연구자가 아닌 창업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정도영=30~40년간 레이저 기반 동위원소 분리 연구를 해왔지만 2010년 이후 산업 환경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체감했다. 과거에는 동위원소가 국가안보나 군사 등 디펜스 중심으로 쓰였지만 반도체·바이오·에너지 등 민간에서도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으로 산소·탄소 동위원소 분리 연구를 진행해 성과를 내면서 '시장에 필요한 기술을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기술 규모가 크고 사업화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정봉기=GS와 블루포인트가 공동 진행한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선정되면서 창업을 결심했다. 약 1년간 창업 준비를 지원받는 과정에서 보유 기술이 배터리 분야와 연결되며 GS에너지의 관심을 받았다.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이 기술이 시장에서 필요하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후 법인을 설립했고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 딥테크 팁스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이강헌=최근 원자력 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설계와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훨씬 큰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연구자로 남기보다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었다.
-현재 기술 성숙도와 상용화까지 남은 과제는.
▶정도영=원자력 산업은 보수적이고 인허가 절차가 까다로워 가장 큰 장벽은 '시장 진입'이다. 지난해부터 팁스(TIPS) 과제로 원자력 소재 R&D(연구개발)를 시작했고, 바이오·반도체·양자산업 관련 특수 소재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대안이 없는 핵심소재를 개발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선점하면 기회가 될 수 있다.
▶정봉기=기술보다 더 큰 문제는 '검증과 허가'다. 원자로에 들어가는 부품은 작은 것 하나도 엄격한 인증을 거쳐야 하고 시간과 비용 부담이 커 스타트업이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한국수력원자력 등 공공기관·전문기관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개발 중인 '소형 핵융합 중성자 발생 장치'는 원자력안전법에 따른 허가가 필요한데 국내에 생산·판매 허가 전례가 거의 없어 절차 자체를 처음부터 하나씩 확인하며 준비하고 있다.
▶이강헌=원자력 RCP(냉각제 펌프) 하중추정 기술이 현재 TRL(기술성숙도) 6단계(시제품 성능 확인)인데 산업계 현장 실증을 통해 8단계(상용화 직전 단계)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원자력 RCP 하중추정 기술은 원자로 냉각재 펌프(RCP)에 작용하는 힘과 진동 등 운전 중 하중을 계산·예측해 설비의 안전성과 구조 건전성을 평가하는 기술이다. 정도영 큐토프 대표/사진=블루포인트파트너스 -최근 사업을 진행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은.
▶정봉기=중성자를 다루는 장비는 안전과 폐기 문제까지 함께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외부에 단독 실험 시설을 구축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예를 들어 방사선을 차단하는 차폐 시설만 해도 건축 비용이 약 30억원 수준이다. 초기 스타트업이 감당하기엔 부담이 크다. 그래서 연구원 내부 시설과 협업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해법이다.
▶이강헌=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 분야 신규 채용이 줄면서 설계와 인허가 경험을 가진 인력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그래서 은퇴를 앞둔 1세대 전문가들을 영입해 팀을 꾸리고 있다. 새로운 원자로를 개발하기보다 이미 검증된 기술을 기반으로 설계·엔지니어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특히 SMR이나 차세대 원자로는 글로벌 시장이 더 크기 때문에 국내외 EPC(설계·조달·시공) 기업들과 협력이 중요하다.
이강헌 알엑스(Rx) 대표/사진=블루포인트파트너스 -딥테크 스타트업이 공공연구기관과 협력할 때 가장 효율적인 모델이 있다면.
▶정봉기=연구기관은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행정 절차가 느린 편이다. 작은 부품 하나를 구매하는 데도 몇 주,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반면 스타트업은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연구기관이 깊이 있는 연구를 맡고, 스타트업이 속도와 실행을 담당하는 '역할 분담형 협력'이 가장 현실적인 모델이라고 본다. 다만 협력 과정에서 이해충돌이나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만큼 이를 제도적으로 정리할 필요도 있다.
▶정도영=많은 출연연 기술이 TRL(기술성숙도) 3~4단계에서 멈춘다. 그 다음 단계로 끌어올릴 산업 기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연구기관이 기술을 TRL 4~5까지 끌어올리고 창업기업이 이를 이어받아 7~8단계까지 상용화하는 '2단계 모델'이 필요하다. 단순 기술이전만으로는 상용화가 어렵다. 실제 연구를 했던 사람이 창업에 뛰어들어 공공과 민간 사이에 '이어달리기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강헌=최근 정부도 민간 주도 R&D 사업을 늘리는 등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더 과감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국가 예산으로 개발된 기술이라면 창업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업화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금은 글로벌 원자력 시장이 빠르게 커지는 시기다. 연구기관 안에 기술이 머물러 있으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기술을 아는 사람이 창업해 사업화하고, 그 성과가 다시 연구기관으로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정봉기 큐빔솔루션 대표/사진=블루포인트파트너스 -앞으로 10년, 원자력 산업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보는가.
▶정봉기=탄소중립 정책이 강화되면서 원자력은 재생에너지를 보완하는 핵심 전원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10년 동안 원자력 산업은 다양한 첨단기술과 결합하며 더 넓은 산업 생태계를 형성할 것으로 본다. SMR과 같은 차세대 원전 기술이 상용화되고, 핵연료·소재·안전기술·엔지니어링 등 관련 분야에서도 새로운 사업모델을 지닌 기업이 계속 등장할 것이다.
▶이강헌=시장이 갑자기 커졌지만 이 분위기가 영원하진 않을 것 같다. 3년 안에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도 있다. 또 산업 전체로 보면 이르면 2030년이 분수령이다. SMR이 실제로 데이터센터 옆에서 운영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 실제 사례가 나오면 관련 검사·해체·엔지니어링 시장도 함께 성장할 것이다. 다만 SMR만이 답은 아니다. 기존 대형 원전과의 병행, 다른 에너지 산업과의 융합도 중요하다.
▶정도영=앞으로 5~10년은 '경제성'이 관건이다. SMR이 실제로 비용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전기와 에너지 문제 해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전 '제2의 원전 르네상스'라는 말이 나왔다. 사고 이후 꺾였지만 지금은 다시 한번 새로운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2035년까지는 민간이 주도하는 원자력 산업이 실제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