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산·학·연·정 협의체 'ASTI', 한국형 '오픈이노베이션 모델' 완성
지역에서 세계로…"글로벌 시장서 기술사업화 성과 거둘 수 있도록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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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열린 ASTI 창립총회 /사진=KISTI# 2020년 이천 물류센터 화재 이후 건축물 내외장재를 '준불연 소재'로 의무화하는 법 개정이 이뤄졌다. 불이 잘 붙지 않는 자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생기면서 냉동·냉장 패널 업계 전반이 기술 전환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삼성판넬플랜트 역시 기존 우레탄 패널을 새 기준에 맞춰야 했지만 국내에는 시험·인증 기관이 적고, 1회 실험 비용이 2000만원에 달해 큰 부담이었다.
이때 경북도청의 소개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대구경북센터와 손잡으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열렸다. KISTI는 인증 시험기관을 연결하고, 총 1500만~2000만원 규모의 시험비를 공동 과제로 분담했다. 또 특허 분석과 시장 조사를 도와 기술개발 방향을 잡고 사업 다각화 전략도 함께 세웠다.
그 결과 삼성판넬플랜트는 지난해 국내에서는 드물게 준불연 냉동·냉장용 우레탄 패널 개발에 성공했고 인증도 따냈다. 법 개정 직후 매출이 3분의 1로 줄었지만 인증 이후 다시 회복세를 타고 있다. 회사 측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 이런 기술을 확보한 건 흔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중소기업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역 기업과 연구기관의 협력을 이어주는 전국 단위 지식공동체 'ASTI(과학기술정보협의회)'가 있다. ASTI는 KISTI를 중심으로 2009년 출범해 현재 전국 1만여 개 기업과 2만3000여명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국내 최대 산·학·연·정 협의체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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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산업 잇는 ASTI, 공공 연구성과 사업화로 中企 성장 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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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지혜ASTI의 핵심 역할은 공공 연구성과와 산업 현장을 연결해 중소기업의 기술혁신과 사업화를 돕는 것이다. KISTI는 이를 위해 디지털·네트워크·AI(D.N.A) 역량과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호남, 충청, 수도권 등 전국 5개 지역센터를 기반으로 지역 기업에 맞춤형 기술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ASTI는 1.0에서 6.0 단계로 발전해오며 공공 연구성과를 기업의 기술 수요와 연결하는 지능형 기술매칭 시스템을 구축했다. 특히 2021년부터는 회원사의 디지털전환(DX)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본격화해 AI와 빅데이터 분석 역량을 결합한 기업 맞춤형 R&D 지원체계를 고도화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2024년 한 해에만 신기술 개발 99건, 신제품 개발 71건, 지식재산권 123건 등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또 같은 기간 △총 매출 증가 1728억원 중 363억원 기여(68개사) △288억원 규모 계약 유발(30개사) △333억원 규모 정부 R&D 과제 선정(33개사) △공동 연구과제 도출 28건(20개사) △R&D 비용 평균 5000만원 절감(58개사) 등 실질적인 경제 효과도 올렸다.
대표 사례로 디엠에스는 KISTI의 기술 지원으로 통신이 끊긴 해상에서도 양망기(바다에 쳐 놓은 그물을 선박으로 끌어올리는 장치)가 음성 명령을 인식하고 이를 수행하도록 하는 AI 모델을 개발했다. 트렌토시스템즈는 KISTI의 양자암호통신 특허 2건을 포함한 핵심기술을 이전받아 미래형 보안 솔루션 개발에 착수했다. KISTI 관계자는 "ASTI는 공공 연구성과를 기업 맞춤형으로 연결해 신속한 사업화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상생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ASTI는 기업의 성장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만 79개 패밀리기업에서 181명의 신규 일자리가 생겨났다. 박영욱 KISTI 지역혁신연구팀 책임연구원은 "ASTI의 지원을 받은 스타트업과 중소·중견기업들이 기술 경쟁력을 높이며 성장한 결과, 자연스러운 고용 확대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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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연구회 네트워크와 산·학·연·정 연결로 혁신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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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TI 발전 로드맵 /사진=KISTI
ASTI는 에너지·바이오·소재·부품·AI·DX(디지털 전환) 등 국가 전략산업 분야별로 '지식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다. 클라우드 전문기업 메가존이 주도하는 'AX 지식연구회', 세포·미생물 배양기 전문기업 씨엔에스가 이끄는 '바이오AI 지식연구회'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활동은 중소기업의 DX 역량을 높이고, 산업 간 기술 융합을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울러 ASTI는 지역별 산업 특성에 맞춘 맞춤형 지원 거점을 구축해 대학, 정부출연연구기관, 지방자치단체와의 긴밀한 협력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역 산업 생태계 경쟁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실례로 부산 ASTI는 한국산업단지공단, 부산벤처기업협회, 부산정보기술협회, 전진엔텍, 부경대, 동의대 등과 함께 산·학·연·정 협력형 디지털 혁신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역 제조기업의 DX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또 경남 ASTI는 지역 ICT협회와 테크노파크 등과 협력해 스마트제조 데이터 개방형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고, 정기적인 기술 세미나를 통해 산·학·연·정 간 정보교류를 활성화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ASTI는 지역의 산업적 강점을 살리면서도 전국적 네트워크와 연계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협력)' 모델을 실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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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는 ASTI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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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ASTI 인도네시아 진출 기술교류회 및 설명회 /사진=KISTIASTI는 이제 국내를 넘어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글로벌 파트너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ASTI 마켓 인사이트' 등 시장 동향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간해 회원사들이 글로벌 산업 트렌드와 시장 변화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러한 지원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미백·주름·자외선차단 등 기능성 화장품을 판매하는 나담코스는 ASTI와 KISTI의 시장 분석 보고서를 토대로 미국 유기농 화장품 시장의 수요를 정확히 예측, 현지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또 다른 회원사인 화장품 ODM(제조자 개발생산) 전문기업 리얼코스는 ASTI의 정보분석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 시장에서 10억원 규모의 신규 수출 계약을 체결, 총 18억원의 수출 실적을 달성했다.
KISTI는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글로벌 ASTI' 사업을 올해부터 한층 강화해 국제 기술교류와 기업 간 매칭 프로그램을 적극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와 관련 지난 5월엔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ASTI 회원사 파트너십 구축 및 기술사업화 지원 교류회를 개최해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협력 모델을 모색했다.
고병열 KISTI 데이터분석연구본부장은 "KISTI는 해외 혁신기관과의 협업 허브로서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며 "ASTI 회원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기술사업화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