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窓]생각나게 만든다는 것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 기사 입력 2024.06.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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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칼럼]

얼마 전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까마득한 옛날, 그러니까 중학교 때 후배에게 온 것이었다. 중학교 땐 퍽 친하게 지냈지만 세월이 흐르며 연락이 끊긴 친구였다. 며칠 전 우연히 내가 쓴 글과 책을 보게 됐고 마침 푸른 초여름 녹음을 보다 생각이 나서 연락하는 거라고 했다. 여러 차례 읽어보길 시도한 책 중 하나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마르셀 프루스트 저) 속 홍차에 마들렌을 찍어 먹다 과거를 떠올렸다는 그 유명한 문구처럼 문득 추억에 잠겼을 때 그 안의 등장인물이 된다는 것은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다.

언뜻 비슷하면서도 마찬가지로 벅찬 일 중 하나가 특정 니즈에 따라 훅 떠오르는 사람 또는 제품이 되는 것이다. 이게 필요의 영역으로 가면 생각보다 꽤 복잡한 논리구조를 동반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퀴즈쇼 결승전에서 지인에게 답을 물을 수 있는 전화찬스를 딱 한 번 쓸 수 있을 때 가장 적합한 상대방을 떠올리는 과정은 어떤 흐름을 담고 있을까. 학창 시절 공부를 제일 잘한 친구, 전화 걸면 무조건 받는 엄마, 답은 모를 것 같지만 핑계 삼아 통화하고 싶던 옛사랑 등등 다양한 연상작용 끝에 논리적인 귀결이 나올 것이다. 방송 모양새 좋게 그냥 남편에게 전화하기로.

전화찬스가 아니라 인터넷검색 찬스면 어떻게 될까. 한때는 '네이버에 묻자' '구글 잇!'(Google it!)으로 통했지만 요즘은 '챗GPT한테 물어보면 되지'로 바뀌는 추세다. 챗GPT는 요즘 정보탐색 용도로서 성능을 쭉쭉 끌어올리고 있다. 검색엔진(Bing)이 붙어 답변 정확도가 오르기 시작했고 이용자와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얻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적절한 정보탐색을 위한 경로파악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와인 레이블에 적힌 지역명을 물어보면 적절한 정보를 주며 맛이 어떠한지 역으로 이용자에게 묻기도 한다. 잡학다식할 뿐 아니라 매일 전화도 잘받고 편히 통화할 수 있는 절친한 친구에게 퀴즈쇼 전화찬스를 쓰고 싶어지듯 더 많은 사람이 챗GPT 같은 언어모델 기반 서비스를 쓰게 될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인 인간 친구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기 쉽지 않은 반면, 후자는 전기가 끊기지 않는 한 늘 존재한다는 것일테다.

이렇게 정보 탐색이라는 기능에서 챗GPT가 사람들의 의식에 새롭게 각인되듯 다양한 니즈에 대해 새로운 서비스들이 각인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세탁을 맡길 땐 어느 서비스, 이사 할 땐 어떤 업체, 배달음식은 무조건 어떤 앱, 스크린골프 예약은 어떤 프로덕트 등으로 사람마다 세팅이 돼 있을 것이다. 그 이용자의 니즈에 따라 이름표가 콕 박혀 있는 분야도 있을 테지만 아직 1인자 없이 군웅할거 중인 영역도 있으며 아예 시작조차 되지 않은 분야도 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는 아주 빠르게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판을 뒤집고 있다. 기존 서비스로부터 차별화해 뾰족하게 시장을 파고들어 점유율을 높이려는 회사들과 사람들이 지금까지 상상도 못한 니즈들을 건드려 "실제로는 당신 삶에서 이런 기능이 정말 필요했을 거예요"라며 시장을 만들어내려는 이들이 계속 무대에 섰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생성형 AI 기술이 무척 빠른 속도로 업계를 뒤흔드는 지금 많은 서비스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고 또 한편에서는 이 기술을 써서 새로 시장을 열거나 기존 시장을 빠르게 파고들 기회를 엿본다. 하지만 기술에만 몰입하지 않기를 바란다. 기술은 도구다. 중요한 것은 정말 그 이용자의 니즈라는 것이 '당장 코앞에서 2000만원의 상금을 타느냐 마느냐'만큼이나 절실한 것이 맞는지, 그렇게 절실해 할 사람의 수가 충분히 많은지, 그리고 그 순간이 왔을 때 그 많은 사람이 그다지 큰 열량을 태우지 않고도 번뜩 생각해낼 수 있게 만들 전략이 있는지인 것 같다. 소수의 이용자 안에서 아련하게 추억되는 것은 서비스보다 사람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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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사진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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