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제구실 못하는 혁신 클러스터

류준영 기자 기사 입력 2023.08.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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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연구개발특구, 강소특구, 첨단의료복합단지, 국가식품클러스터,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국가혁신클러스터, AI(인공지능)클러스터, 물산업클러스터…

중앙 정부의 혁신 클러스터를 나열한 것이다. 클러스터는 기업과 대학, 연구소가 한군데 모여 서로 간 긴밀한 연결망을 구축해 경제·산업의 상승 효과를 이끌어 내도록 한 정책이다.

2000년대 들어 이 모델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 부처별로 다양한 테마의 클러스터를 쏟아냈다. 구체적으로 보면 △연구개발특구는 대전·광주·대구·부산·전북 △강소특구는 경북 포항, 경남 김해, 서울 홍릉, 충남 천안아산 등 14곳 △첨단의료복합단지는 대구·경북, 충북 오송 △국가식품클러스터는 전락북도 익산 내 약 70만평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거점지구인 대전시를 비롯해 세종·청주·천안(기능지구) △국가혁신클러스터는 비수도권 14개 광역시도 △AI 클러스터는 광주광역시 광주과학기술원 일대를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이 모두를 지도 위에 표기하면 한반도 면적을 다 덮을 정도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와 젊은층의 이탈, 투자 소외로 성장 동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지방에선 혁신 성장의 주요 도구인 클러스터 정책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 효과가 현재까지 성적표로 볼 때 기대치에 다소 못 미치거나 제구실을 못하는 곳도 적잖다는 지적이다.

최근 정부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 조사 의뢰한 '국내 클러스터 활성화를 위한 성공모델 구축 및 고도화 방안' 보고서는 각 클러스터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꼬집고 있다.

일부 내용을 보면 대덕 연구개발특구의 경우 보안 등급이 높은 시설이 다수 입지한 탓에 연구자 간 교류가 촉진되기 어려운 공간 구조가 고착화된 데다 각 기관의 연구역량을 결집하기 위한 네트워크 인프라가 부족하다.

또 대덕 특구 입주를 희망하는 기업들은 대학, 연구기관과 인접한 '대덕특구Ⅰ지구(교육·연구 및 사업화시설구역)' 입주를 선호하는 추세가 뚜렷하나 특구법에 따른 입주 규제로 인해 창업 보육 단계를 벗어난 성숙기업의 입주가 어렵다.

아울러 제조 시설 위주의 울산, 포항 등의 지방혁신클러스터와 달리 앵커 기능을 담당할 대기업이 없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어렵고 중소·벤처기업들이 역외로 유출돼 탈대전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울산강소특구에서 인천 송도로 사무실을 이전했다는 신재생에너지 분야 연구소기업 A 대표를 만났다. A 대표는 정부에서 제시한 지원 혜택이 그림의 떡이었다고 토로 했다. 그는 "수도권에 비해 연구인력, 투자금을 확보하기 힘들었고 매출이 있어야 세금 혜택이라도 받을 텐데 시제품 개발에 5년 또는 10년 이상 걸리는 연구소기업에 매출이 있겠나"라며 보다 현실적인 지원책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혁신클러스터의 대표적인 예인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애플, 구글, 테슬라, 넷플릭스 등 빅테크들의 본사가 자리해 있고 스탠퍼드, UC버클리 등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근거리에 있다. 게다가 미국 벤처캐피탈의 40%가 집중돼 있다. 이 덕분에 고급인력 유치, 산학연 교류, 모험자본 확보가 수월하다.

정부가 내년 예산 지출 증가율을 3%대로 낮춰 편성한 가운데 국내 혁신 클러스터의 운영 방식도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역 위기를 극복할 혁신 클러스터의 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접근과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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