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과거의 지혜로 내일의 혁신을 읽는 [위인사이트(We-in-Sight)]를 연재합니다. 집필을 맡은 김우현 팀장은 20여 년간 대학에서 창업생태계의 탄생과 성장을 지원해온 전문가입니다. 현장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역사 속 위인들의 삶을 현대적 기업가정신으로 재해석하여 오늘날의 창업가들에게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과 따뜻한 격려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기사에 나온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업정보는 유니콘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 '데이터랩'에서 볼 수 있습니다.] 김우현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글로벌협력처 홍보팀장
대학이라는 현장에서 다양한 창업자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점은 나름 혁신적인 기술과 화려한 비즈니스 모델이라 외치지만 치열한 시장의 검증대 위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팀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위기의 순간마다 그들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곤 한다. "당신이 해결하려는 문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당신의 비즈니스는 어떤 사람의 삶을 바꾸고 있는가?"
성공하는 창업가에겐 흔들리지 않는 '북극성' 같은 철학이 필요하다. 나는 그 해답을 600년 전, 조선이라는 국가를 경영했던 CEO(최고경영자) 세종의 '한글 창제' 프로젝트에서 찾는다. 창업학적 관점에서 볼 때 한글 창제는 단순한 국가 사업을 넘어 기득권의 정보 독점을 깨뜨린 '파괴적 혁신'이자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사용자 중심(UX)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모든 위대한 창업은 '불편함'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 시작된다. 당시 조선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즉 페인 포인트(Pain Point)는 '언어의 불일치'였다. 지배층은 어려운 한자를 통해 정보를 독점하며 권력을 유지했지만 시장의 대다수 구성원인 백성들은 글을 몰라 관청에 억울함을
호소하지 못했고 농사법조차 제대로 익힐 수 없었다.
세종은 이 지점에서 문제를 발견했다.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배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싣지 못한다"는 훈민정음 서문의 문장은 고객이 겪는 고통을 정확히 관찰한 창업자의 날카로운 통찰과 닮아 있다. 그는 단순히 왕으로서 군림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백성이라는 사용자
가 겪는 지식의 비대칭성을 해결하기 위해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뛰어들었다.
새로운 표준을 만드는 일에는 반드시 저항이 따른다. 세종의 프로젝트 역시 오늘날 스타트업이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와 같은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집현전 최만리를 비롯한 기득권 학사들은 "중화의 도를 저버리는 일"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는 기존 시장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독점 세력의 저항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세종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왕이라는 권위에 기대기보다 철저한 실무와 연구로 승부했다. 눈병이 날 정도로 혹독한 연구를 거듭하며 직접 실무를 챙긴 리더십은 초기 스타트업 대표가 보여줘야 할 '실행력'의 전형이었다. 그는 명확한 비전이 있다면 외부의 비난에 흔
들리지 않고 끝까지 완수해내는 강력한 기업가정신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
한글이 오늘날까지 찬사받는 이유는 그 직관적인 구조에 있다. 세종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자음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뜨고, 모음은 천·지·인(天·地·人)이라는 철학적 가치를 담아 설계했다. 이는 현대의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관점에서 볼 때 학습 비용을 최소화하고 접근성을 극대화한 최고의 UI(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을 마치기 전에 배우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는 말은 한글의 뛰어난 사용자 경험을 증명한다. 복잡한 한자라는 인터페이스를 버리고, 단 28개의 최소 단위(MVP, Minimum Viable Product)만으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표현하게 만든 것은 당대 최고의 하이테크 솔루션이었다. 세종은 기술이 사람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향해야 한다는 '적정 기술'의 가치를 이미 실현하고 있었다.
오늘날 창업을 꿈꾸는 많은 청년들이 기술의 우수성이나 자본의 규모에 집착한다. 하지만 세종의 위인사이트(We-in-Sight)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진정한 혁신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내 곁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불편함을 진심으로 해결해주고 싶어 하는 '애민(愛民)'의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세종대왕은 조선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CEO로서 백성이라는 사용자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도전을 선택했다. 그가 만든 한글은 600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의 가장 강력한 근간이 되고 있다.
당신이 지금 기획하고 있는 서비스는 누구의 삶을 이롭게 하고 있는가? 당신의 비즈니스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때 진심으로 아쉬워할 사용자는 누구인가? 세종이 보여준 이 근본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당신의 창업은 시대를 넘어서는 위대한 여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다. 세종이 한글 창제를 통해 보여준 뜨거운 기업가정신은 오늘도 좁은 사무실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창업가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어야 할 영원한 나침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