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비대면 진료와 낡은 운동화

임상연 미래산업부장 기사 입력 2023.03.0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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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 지난 1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성남시의료원 재택치료상황실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재택치료 환자와 비대면 진료를 하고 있다.   의료진은 비대면 진료를 통해 팍스로비드 투약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환자에게 처방을 할 수 있다. 처방전을 전송받은 약국은 약을 조제해 환자에게 배송한다. 2022.1.21/뉴스1
(성남=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 지난 1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성남시의료원 재택치료상황실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재택치료 환자와 비대면 진료를 하고 있다. 의료진은 비대면 진료를 통해 팍스로비드 투약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환자에게 처방을 할 수 있다. 처방전을 전송받은 약국은 약을 조제해 환자에게 배송한다. 2022.1.21/뉴스1
정부가 오는 6월까지 코로나19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한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를 추진키로 했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의료법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비대면 진료는 2000년 김대중정부 시절 시범사업이 시작됐지만 의료계의 반발과 정부의 소극행정 등으로 23년째 공회전만 거듭했다. 뒤늦게라도 정부가 비대면 진료의 법제화 방침을 분명히 밝힌 것은 고무적이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비대면 진료는 우선 재진환자와 도서벽지 등 의료취약지 환자만 가능하다. 사실상 23년간 수차례 진행한 시범사업 수준과 다를 바 없다. 현재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보다 후퇴한 수준이다. 업계에서 "사실상 규제신설과 같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020년 2월 비대면 진료가 한시 허용된 후 지난해 말까지 누적 이용건수는 3500만건이 넘는다. 오진이나 의약품 오남용, 동네병원 폐업위기 등 우려한 부작용은 크지 않았다. 특히 비대면 진료환자의 상당수는 감기, 소화불량 등과 같은 가벼운 질환을 앓는 수도권 초진환자였다고 한다.

의료 보조수단으로 이미 효과가 입증된 비대면 진료를 시범사업 수준으로 다시 제한하는 것은 혁신을 저해하는 또다른 소극행정이나 다름없다. 이런 식으론 초격차기술·기업육성은 언감생심이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지 않은 곳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6개국뿐이다. 특히 G7(주요 7개국) 국가는 모두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를 허용한다.

가뜩이나 의사부족으로 필수의료 공백이 심각한 상황이다.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비인기 과목은 진료체계 붕괴 우려까지 나온다. 비대면 진료는 필수의료 공백을 메우는 역할도 한다. 실제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나우에 따르면 전체 비대면 진료과목 중 소아과 비율이 최근 3개월 동안 매달 평균 24.8% 상승했다. 역시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운영하는 굿닥도 전체 비대면 진료과목 중 소아청소년과 비율이 올 들어 2배 급등했다. 의사부족으로 소아과가 줄면서 예약 자체가 어렵고 대기시간도 길다 보니 대안으로 비대면 진료를 찾는 국민이 늘고 있는 것이다.

국민 보건적 측면뿐 아니라 산업적 측면에서도 비대면 진료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비대면 진료를 미래 먹거리로 보고 전략적으로 육성했다. 중국의 경우 비대면 진료는 물론 온라인 의약품 판매, 온라인병원 설립, 원격수술까지 허용했다. 관련시장도 빠르게 성장한다. 시장조사기업 IBIS월드에 따르면 2020년 전세계 비대면 진료시장 규모는 37조원 정도로 추산되며 연평균 성장률은 약 14.7%로 급성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의 범위를 시범사업 수준으로 되돌릴 경우 주요국들과의 격차는 영원히 좁힐 수 없을 것이다. 뒤늦게 출발하는 상황에서 낡은 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특히 데이터 경쟁력 측면에서 크게 뒤처질 수밖에 없다.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과 정확성을 높이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대면 진료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학 및 정보통신 기술을 갖춘 만큼 제도 등만 뒷받침된다면 국민 건강증진과 미래 먹거리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신산업을 방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민간부문이 더 잘 뛸 수 있도록 정부가 좋은 운동화를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 전부처가 규제혁신 등 정책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다. 비대면 진료 등 신산업 육성에 가장 필요한 것도 좋은 운동화다. 정부는 앞서 비대면 진료를 시작한 선진국 사례들을 꼼꼼히 살펴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늦게 출발한 만큼 지금부터라도 속도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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