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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이면 3D 모델링 '뚝딱'...글로벌 빅테크 홀린 '토종의 힘'

류준영 기자 기사 입력 2025.09.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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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UP스토리]박진영 엔닷라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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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왜 국산 3차원(3D) 모델링 소프트웨어가 없을까?"

엔닷라이트는 2020년, 이 단순한 물음에서 출발했다. 3D 모델링 기술은 기계·조선·제조 분야는 물론 게임·애니메이션·디지털 콘텐츠 등 소프트웨어 산업 전반에서도 핵심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높은 기술 장벽과 복잡한 사용법 때문에 여전히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박진영 대표는 "3D 모델링 프로그램을 처음 접했을 때 이를 개발한다는 건 꿈 같은 얘기였지만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국산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당시 3D 모델링 분야는 이미 글로벌 기업들이 장악한 시장이었다. 특히 지멘스의 '파라솔리드'는 업계 표준으로 꼽히는 세계적인 모델링 엔진이다. 많은 기업이 이 엔진 라이선스를 사서 쓰고 있었기 때문에 자체 개발을 시도하는 사례는 드물었다. 그럼에도 엔닷라이트는 독자 엔진 개발이라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박 대표는 "파라솔리드는 업계 표준과 같은 엔진이지만 가격이 비싸고 외부 기업이 자유롭게 수정하기 어려웠다"며 "게임 엔진을 개발한 경험이 있는 우리 팀이라면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텍스트 한 줄로 완성하는 3D 모델링, '트리닉스'


창업 초기 엔닷라이트가 만든 '엔닷캐드'는 메타버스 플랫폼에 활용할 수 있는 3D 콘텐츠 제작 툴이었다. 설계자가 마우스로 선과 면을 그리면 실제 도형을 구현하고 길이·각도 등을 자동으로 계산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단순한 설계 지원 툴로 시작한 이 소프트웨어는 지금은 로봇과 인공지능(AI) 데이터까지 연결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엔닷라이트는 엔닷캐드 개발 이후 기술 고도화를 통해 텍스트 한 줄만 입력해도 캐드(CAD) 파일(설계·디자인 도면 파일)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트리닉스(Trinix)' 서비스를 선보였다. 박 대표는 "예를 들어 '아이폰16을 만들어줘'라고 입력하면 실제 캐드 파일이 생성된다"며 "트리닉스는 기업이나 브랜드가 오랜 기간 쌓아온 고유한 디자인 스타일, 철학, 정체성 등을 학습해 고객사 맞춤형 모델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트리닉스의 강점은 정교한 수정 기능이다. 기존 AI 모델링 솔루션은 외형만 구현한 '메쉬(mesh)' 형태 초안만 제공해 세부 수정이 어려웠지만 엔닷라이트의 엔진은 특정 부품만 선택해 편집할 수 있다. 박 대표는 "텀블러 뚜껑 모양만 바꾸고 싶다면 기존에는 처음부터 다시 모델링해야 했지만 우리는 부분 편집이 가능하다"며 "3D 모델링 엔진을 직접 개발하고 보유했기에 구현할 수 있었던 차별화 포인트"라고 했다. 이 기술은 설계 과정에서 반복되는 작업을 크게 줄이고 디자이너가 창의적인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박 대표는 "AI가 초벌 작업을 해주고 사람이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효율을 높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리닉스는 현재 NDA(비밀유지계약)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국내 대기업 6곳에 공급되고 있다. 디자인, 가전, 화장품,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박 대표는 "영업을 따로 하지 않아도 인바운드 문의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며 "다만 현재는 초기 커스터마이징에 3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확장이 마음처럼 쉽지 않지만 연말까지 자동화 시스템을 완성하면 구축 기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웹 기반 협업 플랫폼 '설피'


엔닷라이트는 트리닉스 외에도 협업 플랫폼 '설피'(Surfee)도 개발·운영 중이다. 제조 현장은 여전히 3D 데이터를 2D 이미지로 변환해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수백만원대 프로그램을 사야만 파일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설피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웹 브라우저에서 누구나 3D 파일을 열고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박 대표는 이를 IT·디자인 업계에서 많이 쓰는 클라우드 기반 디자인 작업 협업툴 '피그마'(Figma)에 비유했다. 그는 "피그마가 디자인 산업을 혁신했듯 제조업에도 전 과정을 한 공간에서 관리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설피가 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엔닷라이트의 기술력은 박 대표와 팀원들의 삼성전자 근무 경험과 네트워크가 기반이 됐다. 박 대표는 "우리 CTO(최고기술책임자)는 대학 시절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십 활동을 했고 그때부터 알고 지낸 동료들이 지금 팀의 핵심"이라며 "삼성전자 입사 동기와 후배들도 자연스럽게 합류했다"고 말했다.


'피지컬AI' 부상으로 더 큰 주목


엔닷라이트가 만든 솔루션은 최근 '피지컬 AI' 트렌드와 맞물려 로봇 학습 데이터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실제 로봇을 움직이며 데이터를 수집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드는데 엔닷라이트의 3D 모델은 이를 가상환경에서 재현해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박 대표는 "로봇 전문기업으로 홍보한 적도 없는데 엔비디아 같은 글로벌 빅테크에서 먼저 연락이 올 정도"라며 "가정용 휴머노이드 시장이 열리면 데이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산업용 로봇은 규격화된 환경에서 작동해 데이터가 한정되지만, 가정용 로봇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많다"며 "학습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고 저렴하게 확보하느냐가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엔닷라이트는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이 주관하는 국가 프로젝트 'K-휴머노이드 연합'에 참여했다.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서 데이터 파이프라인 구축에 기여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로봇 데이터는 다음 세대를 이끌 차세대 먹거리 시장"이라며 "특히 한국은 제조 데이터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3D화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 이력에는 세계경제포럼(WEF) 참여라는 이색 경력이 눈에 띈다. 그는 메타버스가 전 세계적 화두가 되던 시절, 업계 리더들과 함께 글로벌 논의에 참여했다. 그는 "메타 CEO인 마크 주커버그와 같은 인물들도 있던 자리로 메타버스 업계 규약이나 기술 흐름, 표준을 정립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제가 추천을 받아 들어가게 됐다"면서 "정기적으로 미팅을 하면서 백서 작성에도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험은 오늘날 엔닷라이트가 주력하는 '피지컬AI' 분야와 연결됐다. 박 대표는 "사실 메타버스와 피지컬AI는 결이 크게 다르지 않다"며 "가상공간에서 3D 데이터를 어떻게 만들고 활용할지 고민해왔던 경험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엔닷라이트는 시리즈A까지 투자를 유치했으며, 연말 또는 내년 초 후속 투자 라운드를 준비 중이다. 박 대표는 "우리는 3D 기술로 단기적으로는 제조업 디지털전환(DX) 혁신에 집중하고, 장기적으로는 로보틱스로 사업 영역을 넓혀갈 것"이라고 말했다

엔닷라이트  
  • 사업분야IT∙정보통신
  • 활용기술인공지능, 메타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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