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한미일 우주동맹의 꿈(上)
[편집자주] 한미일 '우주동맹'이 탄생했다. 3국 정상의 '캠프데이비드 결의'다. 우주는 미중 패권전쟁의 미래 핵심 전장이다. 인공위성이 태양광 전력을 지상으로 쏴주는 기술 등은 '21세기 맨해튼 프로젝트'로 불릴 만큼 미국이 심혈을 쏟는 분야다. 우주기술 공동개발의 파트너가 된 한국엔 천금 같은 기회다. 그럼에도 '한국판 NASA' 우주항공청 설립법은 여야 기싸움에 묶여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1. 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29분 45초, 미국 뉴멕시코 앨라모고도(Alamogordo) 공군 기지 북서쪽 사막. 태양처럼 밝은 빛이 새벽 하늘을 환하게 물들였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인공 핵 폭발 '트리니티(Trinity)' 실험이 성공했다. 최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실화 기반 영화 '오펜하이머'의 소재가 된 핵개발 사업 '맨해튼 프로젝트'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미국은 영국, 캐나다와 손잡고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2. 2023년 8월18일, 미국 메릴랜드주의 미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모였다. 이 자리에서 3국 정상은 AI(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뿐 아니라 우주 등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미래 핵심 신흥기술을 공동개발키로 뜻을 모았다. 중국, 러시아, 북한 등에 맞서 군사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첨단 미래기술을 함께 개발하자는 것이다.
미국 주도 '제2의 맨해튼 프로젝트'에 한국이 함께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원천기술의 미국, 첨단 소재·장비 강국인 일본,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제조업 기반을 갖춘 한국이 힘을 합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미국 외교정책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미·중·러의 신(新)냉전이 우주로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 "태양광 전기, 우주에서 쏘고 지상에서 쓴다"
미국이 주목하는 대표적인 군사 관련 우주 기술이 '우주 태양광 전력 무선전송'(SSP, Space Solar Power) 프로젝트다. 인공위성 등이 우주에서 태양광을 이용해 만든 전기를 지상으로 쏴주는 기술이다.
지난 6월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캘텍, Caltech)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SSP 프로젝트에 성공했다. 일본은 이미 10년 전부터 전력 무선전송 기술 개발에 나서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 한국은 이차전지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역량으로 힘을 보탤 수 있다.
SSP는 미래 전쟁의 양태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미국이 이 기술을 상용화할 경우 미군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전기 에너지 부족에 대한 걱정없이 군용 전기차, 드론, 레일 건 등을 운용할 수 있게 된다.
비단 군사적 용도만 있는 건 아니다. 우주 태양광은 날씨로부터 자유롭다. 사실상 무한한 에너지일 뿐 아니라 탄소배출 문제도 없다. 인류를 에너지 걱정에서 영원히 해방시켜줄 수도 있는 기술이 SSP다.
■ 尹대통령 공약 '항공우주청 설립법' 표류
지난 23일 인도의 무인 우주선 찬드라얀 3호가 세계 최초로 달 남극 착륙에 성공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40년 전까지 달에 가는 게 목표다. 미국은 이미 1969년에 한 일이다. 이 정도로 한국의 우주기술 수준은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우주기술 개발을 주도할 국가적 컨트롤타워 설립 작업은 여야 간 이견에 발목이 잡혀있다. 미국은 NASA(항공우주국), 일본은 JAXA(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가 우주기술 개발을 이끌고 있다.
현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계류된 관련 법안은 지난 4월 정부가 제출한 특별법안을 포함해 총 5건이다. 정부와 여당의 특별법안은 윤 대통령의 공약대로 '한국판 NASA'인 우주항공청을 만드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차관급 기구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의 당론인 우주개발진흥법 개정안(조승래 대표발의)은 대통령 직속 국가우주위원회 산하 장관급 기구인 '우주전략본부'를 신설하자는 것이다. 민주당 과방위 간사인 조승래 의원은 "일개 부처인 우주항공청 대신 범부처 조정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의힘 과방위 간사인 박성중 의원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우주항공청 특별법 처리는 이달 내에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여야 갈등이 증폭되며 우주항공청 설치를 논의할 안건조정위원회 위원장 선출 관련 협의가 중단된 때문이다.
법안 처리에 진전이 없자 정부는 지난달 27일 ' 우주항공청 설립·운영 기본 방향'을 우선 공개했다. 각 부처에 흩어진 우주 관련 정책수립과 연구개발(R&D), 국제협력 등의 기능을 이관받아 300명 이내로 우주항공청을 출범시킨단 계획이다. 한미일 우주동맹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우주항공청 설립이 미뤄져서는 안 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과방위 소속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은 "현재 우리나라는 우주항공분야에서 7대 강국으로 들어서 있지만 늘 추종하고 따라갈 수는 없고 우리가 주도해서 우주 산업 개발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며 " 국가적으로 볼 때 좀 더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한미일 우주동맹과 우주항공청 설립 계획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韓美日 달 탐사, 北中 위협위성 실시간 대응…삼각편대 구축 과제는
최근 한미일 정상이 체결한 우주동맹의 핵심은 '우주안보' 강화다. 북한과 중국의 우주발사체와 인공위성 위협에 공조 체제를 구축해 대응하겠다는 의지다. 과학계는 이번 우주안보 동맹에 더해 미국과 일본이 밀착 협력하고 있는 유인(有人) 우주탐사나 미래 기술개발 등에 한국의 참여 지분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5일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등에 따르면 한미일이 협력할 수 있는 우주안보 분야는 정찰위성 정보공유, 우주교통 관리, 우주상황 인식 등이 꼽힌다. 3국이 보유한 전략자산을 공유할 경우 북한·중국·러시아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런 안보 협력뿐만 아니라 우주탐사 협력을 늘려 우주경제·산업화를 대비해야 한다는 게 과학계 중론이다.
황진영 항우연 박사는 "최근 자유주의와 권위주의 진영 간 신냉전 블록화가 강화되면서 우주 분야의 블록화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며 "이런 측면에서 한미일 우주협력이 필요하며 3국이 보유한 정찰위성 등 우주전략자산을 활용한 안보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주안보 뿐만 아니라 한미일 3국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주도하는 유인 달 착륙 계획 아르테미스(Artemis), 달 궤도 정거장 건설 프로젝트 게이트웨이(Gateway) 등 유인 우주탐사 계획에 협력할 수 있다"며 "특히 유인 우주기지 구축, 우주자원 탐사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해 한 국가가 단독으로 하기 불가능한 만큼 한국에 기회가 있다"고 했다.
■ 美日, 수년 전부터 유인 우주연구…"韓도 공동연구해야"
NASA 아르테미스 임무는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종료된 유인(有人) 달 착륙을 50여년 만에 재개하는 계획이다. 과거처럼 단순 달 착륙에 그치지 않고 달에 거주해 화성으로 가는 목표로 2025년 여성·유색인종 우주비행사를 달에 착륙시킨다. 그 일환으로 NASA는 지구로부터 평균 38만4000㎞ 떨어진 달 궤도에 게이트웨이라는 새로운 우주정거장을 만들고, 이를 달·화성 탐사 전초기지로 활용할 예정이다.
이번 한미일 우주협력을 한국이 더 큰 기회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미·일은 수년 전부터 우주 분야에서 '밀월 관계'를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월 미국은 2020년대 후반 일본 우주비행사를 달에 착륙시키기로 합의했다. 미국 주도로 건설될 달 궤도 유인 우주정거장 '게이트웨이'도 일본 지분이 절반에 달할 정도다. 현재 미국과 일본은 지구로부터 약 400㎞ 떨어진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각종 과학실험을 수행하며 달·화성 착륙에 필요한 기술을 대비하고 있다.
신상우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올해 체결한 미일 우주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일본 기업 도요타가 개발한 월면차를 아르테미스 임무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라며 "양국은 우주탐사 공동연구를 할 때 과학자들이 상대국에 장기체류할 수 있도록 비자를 면제하고, 각종 연구장비 등 물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구체적 협력을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신 연구위원은 "그간 미국과 일본의 우주 기본협정은 중국의 우주활동을 견제하기 위한 안보동맹의 연장선"이라면서 "미국은 다른 국가와 공동연구를 추진할 때 예산 준비가 됐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아르테미스 역할을 확대하려면 우주예산 확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우주태양광, 우주의학 연구 중요…국제협력, 선택과 집중 필요
전문가들은 아르테미스 임무에서 우리나라 지분을 늘리기 위한 전략 수립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한국이 일본 사례를 참고해 미국과 협력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야 한다고 공감한다. 협력이 가능한 분야로는 유인 우주탐사 시대에서 저평가되고 있는 우주의학, 우주태양광 등을 꼽았다. 일본과의 협력은 당장 쉽지 않은 만큼 관련 인력교류부터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우주의학 전문가로 NASA와 협력하고 있는 윤학순 미국 노퍽주립대 교수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진행 중인 연구 60% 이상이 우주의학 연구지만, 한국은 발사체·위성 분야 산업화에만 방점을 찍었다"며 "지난해 맥킨지가 발표한 리포트에도 우주기술과 융합했을 때 효과가 가장 큰 분야를 우주의학 분야를 꼽았다"고 말했다.
윤 교수에 따르면 글로벌 제약사 머크(Merck)는 2017년부터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우주에서 제조하는 연구를 진행했고, 실제 생산 단계로 넘어갔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일라이릴리도 우주에서 신약을 개발 중이다. 지구상에서 중력 때문에 불가능한 실험이 우주의 미소중력 상태에선 가능하기 때문에 예산을 들여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윤 교수는 "미국의 우주의학이 발달한 배경은 국제우주정거장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연속적으로 기술개발을 진행했기 때문"이라며 "우주의학은 엔지니어링(공학)과 융합된 기술이고, 한국이 공학 기술을 잘하기 때문에 정부가 지원만 한다면 우주경제·산업화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야 중 하나"라고 했다.
우주태양광(SSP) 분야도 미일과 협력할 수 있는 분야다. 우주태양광은 지구와 약 3만6000㎞ 떨어진 정지궤도에 인공위성을 띄어 태양에너지를 받아 전기로 변환, 지구로 송전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은 지구상에서의 태양광발전 보다 높은 에너지 획득 효율, 친환경 에너지, 높은 가동률 등에서 미래 혁신기술로 꼽힌다.
미국과 일본은 2008년 미국 텍사스A&M대와 일본 고베대가 공동으로 하와이 섬 사이 148㎞ 거리에서 20W(와트)급 전력을 초단파로 송전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은 2009년 우주태양광전력시스템(SSPS) 연구위원회 활동을 시작으로, 같은해 6월 내각부 산하 우주개발전략본부에서 우주태양광 발전 R&D(연구개발) 계획을 시작했다. 이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태양전지판, 에너지전환기술, 전력전송기술, 위성탑재기술 등을 모두 고도화할 수 있다. 한국이 강점을 지닌 분야가 많아 이에 대한 전략 수립과 구체적 국제협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주강국으로 갈 기회인데"…정쟁에 막힌 '한국판 NASA'
윤석열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한국판 나사(NASA·미 항공우주국)' 우주항공청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이 국회에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우주강국으로의 길이 열렸지만, 여야 정쟁으로 인해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것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국민의힘 간사인 박성중 의원은 25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우주항공청 특별법 처리는 이달 내에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결산 일정을 놓고도 의견이 갈릴 정도로 상호 불신이 깊다. 더불어민주당 과방위 간사인 조승래 의원은 30일 개의 예정이란 입장이지만 박 의원은 "합의한 적 없다"고 했다.
앞서 국민의힘 소속 장제원 과방위원장이 "민주당이 8월 내 '우주항공청특별법'을 통과시켜 준다면 민주당이 원하는 대로 과방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치는 등 총력전에 나섰지만 민주당은 이를 '퍼포먼스'로 치부하고 있다. 여기에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여야 갈등이 증폭되며 우주항공청 설치를 논의할 안건조정위원회 위원장 선출 협의도 중단됐다.
야당은 간사인 조 의원에게 위원장을 맡기겠단 입장인데 국민의힘은 정부안과 상충되는 법안을 발의했단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조 의원은 "법안 처리가 급하면 국민의힘이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의원은 "조 의원은 (우주항공청 설치를 반대하는) 항우연(한국항공우주연구원) 노조와 한 몸이라 안 된다"고 했다. 조 의원은 항우연이 위치한 대전 유성구갑을 지역구로 뒀다.
이같이 여야가 맞서는 건 국가 우주정책 컨트롤타워에 대한 이견 때문이다. 현재 과방위에 계류된 관련 법안은 지난 4월 정부가 제출한 특별법을 포함해 총 5건이다.
정부와 여당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에 차관급 '우주항공청'을 만든단 구상이다. 이 안에 따르면 우주개발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장을 국무총리에서 대통령으로 격상하고 부위원장은 과기부 장관으로 그대로 두며 새로 만들어지는 우주항공청의 청장은 일반 위원으로 추가한다. 정부는 법안 처리에 진전이 없자 지난달 27일 ' 우주항공청 설립·운영 기본 방향'을 우선 공개했다. 각 부처에 흩어진 우주 관련 정책수립과 R&D(연구개발), 국제협력 등 기능을 이관받아300명 이내로 우주항공청을 출범시킨단 계획이다.
반면 민주당의 당론인 우주개발진흥법 개정안(조승래 대표발의)은 대통령 직속 국가우주위원회 산하 장관급 기구인 '우주전략본부'를 신설하자는 내용이다. 조 의원은 "일개 부처 우주항공청 대신 범부처 조정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기부는 장관급 기구 설치에 반대한다. 지난 6월21일 단 한 차례 열린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오태석 당시 과기부 1차관은 "현재 우주 분야를 과기부 2개 과에서 하고 있고 항공 분야는 산업부의 과 단위가 아니고 1명의 사무관이 하고 있다"며 "업무량과 사이즈를 고려했을 때 청급으로 출발하는 게 좋겠단 입장"이라고 했다.
양측의 대립엔 첨예한 쟁점과 이해관계가 깔려 있다. 항공우주청 설립이 윤석열 대통령의 역점사업이란 점에서 정부는 연내 개청에 사활을 걸고 있다. 과학기술계에선 반발이 나온다. 정부는 항우연과 한국천문연구원 등 기존 출연연을 청 산하로 흡수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서 일부 연구조직만 우주항공청의 '임무센터'로 지정해 임무를 수행하게 하겠단 것인데, 우주항공청이 단순 집행조직에 그칠 수 있고 R&D 효율이 떨어질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과기부는 NASA와 NASA 임무센터 간 관계를 벤치마킹했단 입장이다. 항우연은 조승래 의원안에 힘을 싣는다. 자신들과 천문연구원이 신설 우주전담부처 소속으로 이관돼야 한단 것인데, 항우연 조직의 위상에 대한 불안감과 무관치 않단 분석이다.
- 기자 사진 민동훈 기자
- 기자 사진 박소연 기자
- 기자 사진 박상곤 기자
- 기자 사진 김인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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