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도 의사 없어 사망"…필수의료 기피, 연봉도 점점 줄었다

정심교 기자 기사 입력 2023.03.01 16:20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 해주세요.

공유하기
글자크기

[MT리포트]'이공계 엑소더스'와 '의대 블랙홀'③

[편집자주] 카이스트 등 4대 과학기술원에서 최근 5년간 1000명 넘는 학생이 중도 이탈했다. SKY로 불리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공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부분 의대에 지원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공계와 의료계의 처우 차이가 만들어낸 기현상이다. 이에 이공계 엑소더스 실태와 목소리를 담고, 현재 카이스트 등에서 대책으로 마련 중인 의사과학자 육성 계획을 소개한다. 그리고 의대 입시를 대해부하고, 의료계의 상황도 알아본다.
# 지난해 7월, 국내 최대 규모 병상을 가진 서울아산병원의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치료받지 못해 사망했다. 수술할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가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당시 서울아산병원에선 의사들의 학회 참석으로 뇌혈관을 긴급 수술할 신경외과 의사가 아무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간호협회는 입장문에서 추모의 뜻을 밝히며 "의사 부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일깨워 준 예견된 중대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이공계 인재들의 '의대 쏠림' 현상에도 불구하고 정작 필수 의료과는 의사 수가 부족한 실정이다. 특정 진료과의 쏠림 현상과 그로 인한 의사 수 격차가 커졌기 때문이다. 인기 있는 진료과는 넘쳐나는데, 기피 과는 '씨'가 마르는 기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202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진료과별 전공의 충원율은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정신건강의학과(105%), 피부과·성형외과(100%) 등 '인기 좋은' 진료과의 경우 전공의 지원자가 넘쳐났지만 방사선종양학과(21.7%), 흉부외과(64.6%), 비뇨의학과(68%), 산부인과(76.8%), 소아청소년과(89.7%), 응급의학과(94.3%) 등 소위 '기피 과'의 충원율은 정원에 미달했다.

대체로 진료과별 소득이 높을수록 인기와 비례하는 모습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20 한국의 직업정보'에 따르면 '인기과'인 이비인후과(1억3934만원), 성형외과(1억3230만원), 피부과(1억3053만원) 의사의 평균소득은 전체 진료과 가운데 '톱3'에 나란히 들었다.

반면 기피 과로 꼽히는 소아청소년과(1억807만원) 의사의 평균소득은 전체 의사 가운데 10위(상위 소득 50개 직업 중에서는 11위)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기피 과 의사의 주머니 사정은 점차 악화하고 있다. 산부인과(1억2123만원)와 비뇨의학과(1억1108만원), 방사선과(9607만원), 마취병리과(9250만원)의 2020년 평균소득은 2019년보다 각각 439만원, 1425만원, 1212만원, 2791만원씩 감소했다. 이와 달리 최상위 소득 3개 과인 이비인후과·성형외과·피부과의 경우 같은 기간 평균소득이 각각 308만원, 100만원, 1560만원씩 늘었다.



진료과뿐 아니라 지방도 기피… 30%가 서울에


현직·예비 의사들의 기피 현상은 '지역'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지역별 의사 수 격차는 점차 심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7월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에서 보고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인구 10만명당 근무 의사 수는 서울이 305.6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북은 126.5명으로 가장 적었다. 서울이 경북보다 2.42배 높았으며, 전체 의사의 30% 가까이가 서울 지역에 몰려 있었다.

최근 벌어진 속초의료원 응급실 인력 부족 사태는 지방 의사 부족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강원도 속초시에 위치한 속초의료원은 최근 인력난으로 응급실 운영을 축소했다. 연초 응급실 전문의 5명 가운데 3명이 퇴사하거나 퇴사를 앞두면서다. 이곳의 응급실 의료진 공백으로 지난 1일부터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에 4일만 운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의료원에선 일단 응급 환자를 인근의 강릉아산병원이나 속초보광병원으로 안내하는 실정이다.

속초의료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3명을 충원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채용 절차를 진행했다. 하지만 1차에선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고, 2차에선 연봉 4억원대로 국내 의료원 최고 수준의 대우를 제시했지만 1명을 겨우 충원했다. 당시 지원자 3명 중 1명은 서류심사에서 탈락했지만 1명은 면접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에 이 의료원은 나머지 2명을 더 뽑기 위해 지난 24일 3차 공고를 냈다.

대신 이번엔 응시 자격 문턱을 낮췄다. 의료원은 당초 두 차례의 채용 공고에서는 '의사면허 및 응급의학과 전문의 자격증 소지자'로 응시 조건을 한정했다. 그러나 3차 채용에서는 '의사면허 및 응급의학과 전문의 자격증 소지자 또는 응급의학과 전공의 4년 수료자'로 조건을 확대했다. 전공의는 전문의의 전(前) 단계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수련 중인 의사를 말한다. 흔히 '레지던트'라고도 부른다. 다만 의료원 측은 전문의가 아닌 전공의가 채용될 경우 연봉은 별도 협의한다는 계획이다.



진로 방향 틀어서라도 '돈 되는 진료과'로 뛰어들어


의사고시에 합격한 후 바로 '돈 되는 진료과목'을 선택하거나, 다른 과를 전공했지만 돈 되는 진료과목으로 방향을 트는 사례도 적잖다. 인기과인 성형외과·피부과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2월 기준으로 전국 성형외과의원(성형외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1차 의료 기관) 수는 1610곳으로, 2010년 2월(770곳)보다 2.1배 증가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의사'가 개원한 곳은 제외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증이 없으면서 피부과·성형외과 진료를 시행하는 의원까지 합하면 3만여 곳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 ▶성형외과·피부과가 아닌 타과의 전문의이거나 ▶의사고시에 합격했지만 전문의 과정을 아예 밟지 않은 일반 의사 즉, '피부과 비전문의', 성형외과 비전문의'가 성형외과·피부과를 진료하는 '미용 의료' 영역에 뛰어드는 경우가 해당 과 전문의가 개원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기과의 경우 해당 과목을 전공하지 않은 '비(非)전문의'의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흉부외과 전문의 A씨는 "흉부외과나 산부인과나 전공의 지원율이 정원에 미달한 지 오래일 정도로 기피 과"라며 "얼마 전 산부인과 전문의가 보톡스·필러·레이저 등 '돈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해 성형외과를 진료과목으로 둔 의원을 개원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성형외과 전문의 B씨는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사람 즉 '의사'가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니라고 해서 성형외과를 진료하는 것 자체는 위법이 아니지만 수술이 많은 특성상 성형외과 비(非)전문의의 안전사고 우려를 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공의 공백 채운 불법 'PA', 간호법 제정으로 '맞불'


진료과별 전공의의 쏠림 현상으로 '구멍' 난 진료과의 경우 상급종합병원에선 구멍을 메우기 위한 방편으로 'PA' 간호사를 두고 있다.

PA는 '공식적'으로는 우리나라에 없는 직종이다. 이 개념은 미국에서 처음 생겨났는데, 미국에서 'PA'는 의사 보조를 뜻하는 '피지션 어시스턴트(physician assistant)'의 약자로, '진료 보조 간호사'라고도 불린다. 미국에서 PA가 되려면 관련 면허를 취득하고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유망 직종으로 꼽힌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PA를 둘 수 없다. 현행법상 '의료인'의 분류에 PA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법 제2조에 따르면 '의료인'엔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간호사에 국한한다. 그런데도 'PA 간호사'로 불리는 인력은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전국에 1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PA'로 불리는 간호사는 보통 병원에서 일반 간호사 가운데 일부 인원을 차출해 외래 병동 중환자실 수술실 등에서 의사 ID를 통한 진료의뢰서 발급, 진단서 작성, 투약, 검사 처방, 수술, 시술 등의 업무를 도맡아 사실상 전공의의 역할을 대체한 실정이다. 이 과정에서 의료사고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 환자에게 위해를 끼칠 우려도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대학병원 흉부외과 전문의 C씨는 "흉부외과처럼 몇 시간 동안 꼬박 서서 육체적 노동을 해야 하는 진료과는 기피 현상이 심해 의사의 씨가 마른 지경"이라며 "전문의·전공의 자체가 크게 줄다 보니 PA 같은 간호사의 존재가 절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대한간호협회가 27일 개최한 제90회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대의원들이 '간호법 제정'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며 시위하고 있다. /사진=대한간호협회
대한간호협회가 27일 개최한 제90회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대의원들이 '간호법 제정'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며 시위하고 있다. /사진=대한간호협회
간호사들은 이미 업무가 과도한 데다, 불법적인 'PA' 역할까지 도맡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한간호협회를 필두로 한 간호사들은 '간호법'을 제정해 업무 영역 선 긋기에 나서고 있다. 간호법 제5장 24조엔 '누구든지 간호사 등에게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는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

정부는 위기에 직면한 필수 의료 인력을 육성하고 지역의료 격차 해소,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등을 위해 '의료현안 협의체'를 꾸리고 지난달 30일과 이달 9일 1, 2차 회의를 열었다. 이는 앞서 2020년 의사단체와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안건을 놓고 팽팽히 맞선 지 2년여 만에 양측이 협상 테이블에 앉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협의체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 9일 간호법과 의사면허 취소법이 국회 본회의로 직 회부되자 의사 단체의 반발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12일 대한의사협회(의협) 대의원회는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긴급 운영 위원회를 열고 "정부와의 대화를 중단할 것"을 집행부에 권고했다. 16일 3차 회의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의협 집행부는 의료현안 협의체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보건복지부에 통보했다. 의사단체와 정부의 대화 창구가 막히면서 의료인력 격차 문제는 한동안 제자리걸음을 할 전망이다.
  • 기자 사진 정심교 기자

이 기사 어땠나요?

이 시각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