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폭망'해도 VC는 속수무책…"사후관리 역량 키워야"

남미래 기자 기사 입력 2023.02.2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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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지난해 3분기 말이 돼서야 그린랩스에 자금경색 문제가 있다는 점을 보고 받았다. 현재는 그린랩스와 해결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그린랩스 투자사 관계자)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을 목전에 둔 에그테크 스타트업 그린랩스가 경영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1700억원의 투자금을 받고도 위기에 봉착한 건 채권시장이 경색된 하반기부터다. 그린랩스는 농민으로부터 구입한 농산물을 판매상으로 넘기는 사업을 전개했다. 판매상으로부터 받은 대금은 현금이 아닌 어음(매출채권)이었는데, 지난해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매출채권을 담보로 한 대출이 중단됐다. 미회수된 채권이 늘어나면서 회사 곳간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22일 벤처캐피탈(VC) 업계에 따르면 투자심사역들은 신규 투자보다 포트폴리오사 사후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그린랩스를 비롯해 수산물 배송 플랫폼 업체 '오늘식탁', 다중채널네트워크(MCN) 1위 샌드박스네트워크 등 경영 위기에 직면한 스타트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실 VC가 투자기업의 경영현황을 속속들이 알기는 쉽지 않다. 통상 VC는 투자기업의 재무 역량을 점검하기 위해 3개월마다 분기보고서를 받는다. 그러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없는 스타트업이 대부분이어서 제때 제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심지어 스타트업의 구조조정으로 그나마 있던 CFO의 공석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 때문에 주요 거래처에 대금이 밀린 상황을 주주인 VC가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대형 VC 심사역은 "투자유치 계약서에 주기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경영 현황 자료를 명시해놓고 딱 거기까지만 자료를 받는다"며 "급속도로 자금경색이 발생한 그린랩스의 경우 악성 매출채권을 파악하는 매출전표나 현금흐름표를 봐야 하는데, 사실 소규모 스타트업에게 요구하기 힘들고 2~30개의 투자기업을 관리하는 심사역도 일일이 다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때문에 VC 심사역들은 투자기업의 사후관리보다 신규 투자유치나 스케일업에 집중하는 경향이 짙다. 이른바 '폭망'한 스타트업 8~9곳을 관리하기보다 성공한 스타트업 1~2곳을 관리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중형 VC 임원은 "투자기업 10곳 중 1~2곳만 살아남아도 성공한 펀드"라며 "1~2곳 기업에서 큰 수익률을 올리면 전체 펀드 수익률이 플러스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스타트업에 후속투자를 통한 자금 지원도 거의 끊어진 상태다. 대신 '런웨이'(추가투자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기간)을 늘리기 위해 인건비나 마케팅 비용 감축을 요구하는 경우가 흔하다. 한 VC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어려운 스타트업도 돈만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고 후속투자가 종종 있었다"며 "요즘엔 스타트업이 경영효율화를 통해 자생력을 먼저 갖추기를 요구하고 정부기관의 대출을 소개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VC가 스타트업에 대한 사후관리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모험자본 특성상 일부 투자기업에서 손실을 보는 건 불가피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체 벤처펀드의 3분의 2가 모태펀드 등 정책금융 출자로 결성되는 만큼, 투자와 사후관리 역량을 두루 갖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VC 관계자는 "모든 투자기업이 회수에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VC가 위기 관리 역량을 갖추는 데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던 것은 사실"이라며 "국내 벤처시장이 정책자금 의존도가 높은 만큼 VC도 사후관리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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