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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던 집도 내놔라"…회사 망하니 창업자 덮친 연대책임 폭탄

고석용 기자, 송지유 기자 기사 입력 2025.08.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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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창업자 연대책임 굴레(上)

[편집자주] 죽을 둥 살 둥 매달렸던 스타트업이 망했다. 폐업 절차를 밟는다고 끝이 아니다. 자산이 많아 '내돈 내사업'한 창업자가 아니라면 투자사로부터 막대한 청구서가 날아올 수 있다. 벤처 창업자를 옥죄는 연대책임 제도가 사라진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연대 책임의 굴레는 2025년에도 여전하다.


"창업자 집까지 가압류"…사라진 줄 알았던 '연대책임' 줄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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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챗GPT
/이미지=챗GPT
벤처 투자사가 스타트업 창업자 개인에 연대책임을 묻는 소송이 잇따르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2022년부터 스타트업 창업자에 대한 연대책임 부과 금지 조치를 시행하고 있지만 곳곳에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솔리더스인베스트먼트(솔리더스)와 피투자사인 헬스바이옴 창업자인 김병찬 대표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솔리더스 측이 투자 시 고지받은 헬스바이옴의 사업모델과 기술이 실제와 다르다는 이유로 투자금 반환을 요구했다. 문제는 헬스바이옴이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하자 김 대표에게 주식매수권을 청구, 자택 등 개인 자산을 가압류하며 연대책임을 물었다는 점이다.

솔리더스 관계자는 "김 대표가 계약서 진술 보장 의무를 어겨 귀책 사유가 있는 만큼 연대책임 부과를 금지한 법률 위반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반면 헬스바이옴 관계자는 "솔리더스 주장대로 계약 진술보장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면 다른 투자자들도 투자금 반환을 요구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솔리더스를 제외한 다른 투자자들은 전혀 문제 삼지 않은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산업은행(산은)과 피투자사인 켐코 창업자인 고세윤 대표 간 소송도 비슷하다. 켐코가 경영 악화를 이유로 최근 법인회생을 신청했는데 산은은 법인뿐 아니라 고 대표 개인 소유 부동산까지 가압류하며 투자금 반환을 요구했다.

산은 측은 "고 대표가 법인회생 신청 과정에서 충분히 협의하지 않는 등 투자계약을 위반했다"는 입장이다. 고 대표는 "보안 사안이어서 모든 주주와 협의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며 "회생이 받아들여져 재기 노력을 하고 있는데 대표 개인에게 연대책임을 지우는 산은의 조치가 과하다"고 맞받았다.

투자자와 창업자 간 갈등은 비일비재하지만 연대책임 소송으로 번지는 건 우려스럽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벤처투자촉진법(벤촉법) 시행령 개정 이후 스타트업 창업자의 연대보증 족쇄가 완전히 풀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법으로 보호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최근 신한캐피탈이 피투자사 어반베이스 하진우 대표를 상대로 한 연대책임 소송(5억원 투자, 약 12억5000만원 청구) 1심에서 승소한 것은 부처 간 장벽이 현장에서 얼마나 큰 혼란을 만들었는지 보여줬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중기부가 아닌 금융위원회 감독을 받는 신금융기술회사(신기사)는 아직도 연대보증 금지 조항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며 "투자받기 쉽지 않은 국내 벤처 생태계 속에서 부당한 계약인 걸 알면서도 사인할 수밖에 없는 창업자들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앞으로 유사한 법적 분쟁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 벤처캐피탈(VC) 대표는 "VC도 LP(출자자) 자금을 받아 투자를 집행하는 만큼 손실을 최소화해야 하는 선관주의 의무가 있다"며 "계약서에 명시된 연대책임이 합당하다는 판결이 나온 만큼 과거 벤촉법 적용 이전 투자나 신기사 투자 가운데 연대책임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5억 빌려주곤 "12억 내놔라"…회사 망하면 개인 재산까지 탈탈?


벤처 투자사들이 잇따라 스타트업 창업자에 대한 연대책임 소송을 제기하면서 업계 혼란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벤처 투자사들이 잇따라 스타트업 창업자에 대한 연대책임 소송을 제기하면서 업계 혼란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창업자 연대책임이 도대체 언제 적 족쇄인가요. 그런데 아직까지 남아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소송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무대에선 AI(인공지능) 전쟁이 한창인데 한국에선 고릿적 제도 하나 바꾸는 것도 이렇게 어려우니 무슨 경쟁이 되겠습니까." (A 스타트업 대표)

벤처 투자사들이 스타트업 대표에 연대책임을 묻는 소송이 잇따르면서 업계 혼란이 확산하고 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연대책임이 부활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한편 폐업 또는 회생을 신청한 스타트업 창업자에 소송을 검토하는 투자사도 늘고 있다.

5억원을 투자했던 스타트업 어반베이스 대표를 상대로 연 15% 복리로 12억원 넘는 돈을 되돌려달라며 소송을 낸 신한캐피탈 사태의 여운이 컸다. 1심 법원은 계약조항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워 신한캐피탈의 손을 들어줬다. 모험투자의 취지나 벤처시장 현실은 반영되지 않았다. 솔리더스인베스트먼트와 피투자사 헬스바이옴, 한국산업은행과 피투자사 켐코의 소송전 역시 창업자 소유 부동산을 가압류하는 등 연대책임 성격이 강하다.

■ 회사 망하면 무한책임(?)…벤처 창업자들 '덜덜'

지난해 국내 벤처투자 현황 및 신기술금융회사 벤처투자 추이/그래픽=윤선정
지난해 국내 벤처투자 현황 및 신기술금융회사 벤처투자 추이/그래픽=윤선정
2000년대 초반 IT 버블이 터지면서 1세대 벤처인들은 자취를 감췄다. 회사가 망할 때 개인 재산까지 모두 잃어 재기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속출했고, 잘못된 제도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나서 벤처기업 창업자의 연대책임을 정책적으로 금지하는 제도를 만들면서 최근엔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창업자에 대한 징벌적인 연대책임이 사라졌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회적 합의를 뒤집는 소송이 이어지면서 스타트업 창업자들 사이에선 공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신한캐피탈 소송전을 통해 중기부의 관리를 받는 벤처투자회사(벤투사)가 아니라 금융위원회의 관리감독을 받는 신기술금융회사(신기사)로부터 투자받은 경우는 연대책임 조항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사각지대라는 점이 확인돼서다.

중기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서 벤투사와 신기사가 차지하는 투자 비중은 엇비슷하다. 최근 5년간(2020~2024년) 신기사가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은 30조원에 육박한다. 피투자 기업 수는 9200곳 이상에 달한다.

유동성이 정점에 달했던 코로나 팬데믹 기간 지나치게 높은 가치로 투자받았던 스타트업 가운데 최근 휘청이는 곳들이 많아 향후 유사 소송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실제 올 들어 법인파산 신청은 늘고 있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 상반기 법인파산 접수 건수는 110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87건) 대비 11.8% 증가했다.

법인파산 접수 추이/그래픽=윤선정
법인파산 접수 추이/그래픽=윤선정


■ 20년째 못 뺀 대못…해법은 국회서 '쿨쿨'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4일 오전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연대보증 폐지 진행상황 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이기범 기자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4일 오전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연대보증 폐지 진행상황 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이기범 기자
전문가들은 성실 경영을 했지만 부득이하게 실패한 창업자에게도 연대책임을 묻는 현실은 창업 생태계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불합리한 규제를 없애 제2의 벤처붐을 일으키자는 구호가 쏟아진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연대책임이라는 대못을 빼지 못한 요인을 찾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상우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은 "스타트업 창업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자유치 계약을 할 때 연대책임 요구를 받는다"며 "투자사의 위험관리 편의를 위해 과도한 연대책임을 요구하는 관행은 벤처투자 본질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도 "신한캐피탈 소송 이후 연대책임 소송을 검토하는 투자사들이 늘어나는 분위기"라며 "창업을 활성화한다며 창업 의지를 꺾는 제도는 정비가 시급하다"고 짚었다.

창업자의 연대책임 조항을 없애는 내용이 개정안을 발의한 김종민 무소속 의원/사진=뉴시스
창업자의 연대책임 조항을 없애는 내용이 개정안을 발의한 김종민 무소속 의원/사진=뉴시스
스타트업 창업자에 대한 과도한 연대책임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정치권에서 뒤늦게 법 개정 움직임이 일었지만 관련 법안은 수개월째 국회 계류 중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종민 의원은 지난 2월 벤처 창업자의 연대책임 조항을 해소하는 내용의 '벤처투자촉진법 및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벤투사뿐 아니라 신기사 역시 창업자에 연대책임을 부과할 수 없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다만 부실 경영, 횡령·배임, 고의 파산 등 창업자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한 벤처투자사 대표는 "일부지만 신의성실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작정하고 투자금을 빼돌린 사례가 있다"며 "창업자뿐 아니라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 조치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창업자들 스스로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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