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불며 버텼다"…폐그물로 '가방' 만든 20대 CEO의 '깡'

최경민 기자 기사 입력 2022.09.2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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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터뷰 : ZZINTERVIEW] 27-④ 업사이클링: 임소현 컷더트래쉬 대표

[편집자주] '찐'한 삶을 살고 있는 '찐'한 사람들을 인터뷰합니다. 유명한 사람이든, 무명의 사람이든 누구든 '찐'하게 만나겠습니다. '찐터뷰'의 모든 기사는 일체의 협찬 및 광고 없이 작성됩니다.
임소현 컷더트래쉬 대표/사진=컷더트래쉬 제공
임소현 컷더트래쉬 대표/사진=컷더트래쉬 제공
"이 사업은 왜 하시게 됐어요?"

임소현 컷더트래쉬 대표(27세)가 사업 설명을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라고 한다. 컷더트래쉬는 폐그물과 같은 해양 폐기물을 이용해 가방 등을 만드는 기업이다. 바다에 버려지는 폐기물을 업사이클하는 사업. 상상만 해도 힘든 일이기에 이런 질문은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다.

지난 19일 경기도 부천시에 위치한 컷더트래쉬 사무실에서 임 대표를 만난 '찐터뷰'도 자연스레 같은 질문을 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이걸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시도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한번 해보자는 마음가짐"이라고 설명했다.

당찬 답변. 우문(愚問)을 던진 것 같다는 생각이 곧바로 들었다. 그런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임 대표는 다음처럼 'KO 펀치'를 날렸다. 그래, 우문이 맞았다.

"'왜 하냐'는 질문의 경우 본인들은 못할 것 같으니까 물어보는 게 아닐까요? 오히려 저에게 기분이 좋은 말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일을 하는 중입니다."


'폐그물 업사이클 가방', 통했다


임소현 대표는 10대 때부터 디자이너가 꿈이었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각종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 하지만 '패션'은 그 특성상 환경 오염을 많이 일으키는 산업이다. '내가 꿈꿔온 디자이너가 환경을 오염시키는 직업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그럼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는 패션 브랜드'를 만들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외가인 제주 바다에서 심각해지고 있는 해양 폐기물 문제를 떠올렸다. 사랑해 마지않는 제주 바다를 괴롭히는 폐그물 등 쓰레기들. 그것들을 모아 뭔가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폐그물을 그대로 살린 컷더트래쉬의 시그니처 가방/사진=컷더트래쉬 홈페이지
폐그물을 그대로 살린 컷더트래쉬의 시그니처 가방/사진=컷더트래쉬 홈페이지
임 대표는 세척한 폐그물을 그대로 활용한 에코백 등 가방을 제작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2019년에는 개인사업자, 2020년에는 법인사업자로 등록했다. 2021년에는 여수광양항만공사와 부산·인천·울산 항만공사가 공동주최한 '창업 아이디어 발굴 해커톤'에서 대상을 받았다. 여수광양항만공사로부터 폐그물 등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며 사업을 본격적으로 키워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2022년 현재, 임 대표는 인턴 포함 7명의 직원을 고용한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주력상품인 폐그물 에코백 외에도 폐플라스틱 등을 활용한 옷과 가방으로 라인업을 확장했다. 조만간에는 폐그물을 모아 만든 칩으로 제작한 캠핑박스 등 제품 다변화 역시 추진할 예정이다. 일본 등 해외 진출 계획도 생각하고 있다.


"때려치우고 싶어서 울고불고 그랬다"


이렇게 보면 불과 2~3년 내에 승승장구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임 대표는 "한때 다 때려치우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며 웃어보였다. 그와 조금 더 대화를 나눠봤다.

- 왜 때려치우고 싶었나.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는데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 어떤 고생을 말하나.
▶"폐그물을 모으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냥 '맨땅에 헤딩'이었다. 경기도, 서해안 등에 위치한 포구들을 검색하고, 닥치는 대로 찾아갔다. 그곳의 어부들에게 그물을 받아서 시제품 등을 만들 수 있었다."

- 육체적으로 힘들었다는 것인가.
▶"비 오는 날 폐그물을 직접 들고 자동차에 구겨 넣던 날이 생각난다. 세척 전의 폐그물에서는 냄새가 많이 난다. 그걸 세척업체로 들고 가도, '세척해줄 수 없다'는 답변이 나올 때가 있었다. 그러면 그 폐그물을 들고 또 다른 세척 업체를 찾아다니고. 비 맞으며 막 울고 그랬었다."
= 해양수산부가 2015년 독도에서 마련한 광복70주년 해양생태계 복원기념행사에서 해양폐기물수거업체 관계자들이 폐그물 등 쓰레기 수거작업을 하고 있다. 2015.8.10/뉴스1
= 해양수산부가 2015년 독도에서 마련한 광복70주년 해양생태계 복원기념행사에서 해양폐기물수거업체 관계자들이 폐그물 등 쓰레기 수거작업을 하고 있다. 2015.8.10/뉴스1
- 들어보니 제작 과정도 순탄치 않았을 거 같다.
▶"거절을 엄청나게 당했다. 시제품 100개 생산을 하려 했을 때는 공장에서 생산 작업 중간에 포기를 하더라. 금액을 더 높여도 안 된다고 생산을 중단했었다. 울고불고 그랬다. 그런데 요즘은 기초 체력이 생겼다. 이제는 거절을 당해도 멘탈이 괜찮다."

- 그렇게 울면서 버틴 이유가 뭔가.
▶"(웃으며) 약간 '덕후'의 마음이었던 거 같다. 해양 쓰레기 문제를 끈질기게 접근하고, 0.01%라도 폐그물을 줄이는 것. 그게 나와 컷더트래쉬의 목표다."


꿈은 '직원 100명'…"디자인으로 승부볼 것"


임 대표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으면 이 사업을 안 했을 것 같다. 돈이 많이 든다. 우리가 돈을 주고서 폐그물을 재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사업 목표가 뭐냐고 물으니 "직원 100명의 회사로 만드는 것"이란다.

돈을 많이 벌고 싶진 않지만, 직원 100명의 회사로 키우고 싶다? 모순이 아니냐고 되물었더니 크게 웃는다. 임 대표는 "그래서 사업을 이제 다변화해야 한다"라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부분과, 자원순환으로 에코 임팩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분야를 같이 가지고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업가로의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컷더트래쉬는 2024년까지 총 4톤(t)에 달하는 폐그물을 업사이클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현재 매출의 10% 수준인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비중도 넓힌다는 계획이다. 컷더트래쉬의 폐그물 업사이클 가방 등을 처음 보면 폐그물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산뜻한 디자인에 눈길이 간다. 이런 면모가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비결이다.
컷더트래쉬의 디자인 철학이 담긴 가방. 백팩, 슬링백, 숄더백, 크로스백, 에코백으로 활용 가능하다. /사진=컷더트래쉬 홈페이지
컷더트래쉬의 디자인 철학이 담긴 가방. 백팩, 슬링백, 숄더백, 크로스백, 에코백으로 활용 가능하다. /사진=컷더트래쉬 홈페이지
'한 가지 제품에 한 가지 가치만 제공하지 말자'는 디자인 철학도 호평받고 있다. 컷더트래쉬의 플라스틱 업사이클 가방의 경우 스트랩을 붙이고, 떼어내고, 넣기에 따라 백팩, 슬링백, 숄더백, 크로스백, 에코백으로 활용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디자인에 '플러스 알파'를 담은 게 젊은 세대에게 '힙'으로 다가가고 있다.

임소현 대표는 "친환경만으로는 고객들이 '매력적'이라 느끼기 힘들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 어쨌든 디자인으로 승부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이게 친환경 제품이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디자인 쪽으로 홍보를 많이 할 계획이다. '친환경'은 은근하게 보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더 선호할만한 그런 브랜딩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기자 사진 최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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